[칼럼] ‘탄소’ 통상장벽, 다자 체제로 대응해야

- 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유럽연합(EU) 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선진국의 통상장벽이 미국을 거쳐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이라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저탄소 기술과 산업을 육성하면서 개도국의 탄소 집약적 상품으로 인한 자국의 산업 경쟁력 약화와 일자리 감소를 막기 위해서 세금, 관세부과, 배출권강제구매 등의 수단을 사용하여 탄소집약적 상품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새로운 통상장벽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탄소국경조정에 관한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굳이 이전에 세계무역기구 (WTO)의 무역과 환경에 관한 분쟁사례가 아니더라도, 2000년대 후반 2012년 이후 새로운 기후변화체제 논의를 위한 코펜하겐 기후변화 협상 당시에도 상당히 고려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무역 실현을 위한 무역규범과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환경규범 사이의 충돌은 이론적으로도 환경보호를 위한 무역장벽 사용이 가능할지에 대한 논란으로 현실화 되지 못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 EU는 2019년 말 그린뉴딜 정책을 도입하면서, EU 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U의 그린뉴딜은 EU 역내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그 직후 코로나19로 인해서 EU의 자국 산업경쟁력 보호 필요성이 더 커졌다. 지난해 9월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이 2021년 EU의 중요한 이니셔티브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유럽 의회 역시 올 2월에 채택한 보고서에서 탄소누출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산업전략의 하나로 WTO 규정에 부합하고, EU 재정에도 기여하는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도입을 예견하고 있다. 아무래도 올해 하반기에는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

탄소국경조정 정책의 도입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감지된다. 최근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50년까지 일자리 창출과 함께 제로 탄소배출 달성을 위한 확실한 길을 닦겠다고 공언했다. 2035년까지 100퍼센트 제로 탄소배출 전력생산 달성 및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녹색투자도 내세우고 있다, 공격적인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응계획에는 문제의 탄소국경조정 세금부과 또는 쿼터의 도입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의 계획에 대해서 EU는 올해 중반까지 ‘범대서양 녹색무역 어젠다’에 탄소국경조정을 포함할 수도 있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그런데 EU의 이런 움직임에 국제사회 기후변화 리더십 회복을 내세우고 있는 미국이 그대로 따라갈지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최근 지구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3대 축의 하나인 중국은 상대적으로 자국 제품의 탄소집약도가 높기 때문인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지난해 9월 중국 시진핑 주석은 유엔 총회연설에서 "중국은 2030년에 탄소배출량 정점을 찍은 후 206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발전부문에서 배출권거래제도를 시행하는 등 탄소가격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은 EU 집행위원장이 다보스 포럼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EU에 대한 수출국이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EU 입장에서는 탄소누출에 대한 우려가 없어지기 때문에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도입에 대한 정당성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중국 등 몇몇 국가에 대한 위협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주요 국가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양자적인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보다는 다자적인 자유무역규범과 유엔기후변화협약 프로세스를 통한 문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다자규범과 프로세스를 그렇게 강조한 EU가 이렇게 성급하게 양자적 접근을 추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의 전통 우방국가인 우리나라는 제재의 대상이 아니라 미국과 양국 시장은 물론 제3국의 저탄소 시장개척 협력을 통하여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에 같이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상품이 계속해서 EU와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유럽과 미국 시장 진출이 막힌 중국산 탄소집약적 상품이 우리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막는 길이다.

[에너지 경제,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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