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첫 쿼드 정상회의와 한국 경항모의 전략적 가치

-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일본·인도·호주까지 참여하는 쿼드(Quad) 정상회의를 열면서 인도·태평양전략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책을 대부분 뒤집으면서도, 중국을 대상으로 한 안보정책은 예외다.

미국은 경제·신기술·우주·해양·사이버 등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수많은 정책 보고서를 통해 강조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독자적 접근이 아닌 쿼드를 중심으로 연합전력을 구축하려는 이유는 미국의 장악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격한 전략 환경의 변화는 한국의 전략가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취해야 하고, 이것이 가능한 선택이라 판단한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입증하듯 ‘세력균형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균형을 내세운 등거리 외교는 동맹은 물론 잠재적 적대국들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미국과의 의도적 거리두기가 결코 중국의 신뢰로 적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미·중 대결의 최전선에 위치한 지정학적 구도에서 더는 한반도라는 좁은 구역과 내해에 갇혀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에서는 역할이 위상을 만든다. 북한을 넘어선 세계국가로서의 비전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경항모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무기체계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세계로 나가기 위한 상징이며 메시지가 돼야 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한국을 배제하고 성사될 수 없다. 중국은 서쪽으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구축했다. 이제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알류샨 열도와 북극해로 이어지는 일대이로(一帶二路)를 전개하고 있다. 한국 해역이 중국 해상 도전의 출발점이다. 이미 중국 드론은 한국의 청해부대나 림팩 훈련에 참여 중인 한국 구축함을 추격한 지 오래다. 일본은 여전히 경항모를 ‘다목적함’이라 부른다. 미래를 대비한 포석으로 융통성 있게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항모 전단 확보는 북극항로를 지켜내고 전략적 경쟁자를 둔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는 동맹 강화의 신호로 간주될 것이다.

쿼드에 참여 중인 인도는 중국에 군사적 봉쇄 의도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유연성을 내세운 인도는 백신 수출뿐 아니라 전략적 위치를 굳히는 성과를 거뒀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단어조차 금기시하는 한국과 비교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의 공통분모를 찾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드의 ‘3No’ 정책을 되돌릴 수 없다면 경항모 전단의 확보는 정책 간 균형을 찾는 회심의 카드가 될 수 있다.

한국의 항모전단 확보는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본과 중국은 아프리카 지부티에 해외 기지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 경항모 운용은 해양 전략과 세계 전략의 수립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계국가 한국은 북한의 도발만 견제하며 지난 70년을 용케 살아왔지만 더는 그런 요행은 기대할 수 없다. 세계는 이미 우리의 선택을 묻고 있다. 한국의 운명을 우리가 개척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핵심가치라면 위험을 감수할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해적들이 미국 상선을 나포할 때마다 의회 반대를 무릅쓰고 원정부대를 아프리카 해역에 파견해 무력으로 대처했다. 그는 신생국 미국이 강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향후 더 많은 시련과 도전을 겪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항모전단은 상쇄전략의 상징이 돼야 한다. 위기가 닥치면 마지막 항해를 단행할 강력한 의지가 있음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

[중앙일보,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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