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이 ‘쿼드’에 참여해야 할 4가지 이유

-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前 외교안보수석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3일 백악관이 발표한 임시 국가안보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Guidance)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행한 연설에서 외교 안보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을 기존 국제 질서에 도전할 종합적 국력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로 지목하고 미·중 관계를 “21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시험”으로 규정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이어가고 있으나 동맹 체제를 그 중심에 두고 전방위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이러한 전략의 핵심은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와 일본·호주·인도를 규합한 쿼드(Quad) 확대이며 이는 17일 5년 만에 재개되는 한·미 ‘2+2 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우리의 쿼드 참여 여부는 한·미 관계의 미래와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입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중대 사안이다. 대한민국이 쿼드에 참가해야 할 이유를 네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쿼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 지형 재편과 이에 따른 지역 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안전을 지킬 보험으로써 의미가 있다. 한·미 동맹이 우리 안보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쿼드는 이를 보강할 재보험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에 대한 실존적 위협은 역사적으로 항상 역내 신흥 패권 세력에서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이 종식되기까지 반세기 동안 아태 지역의 평화를 파괴하고 한반도 침탈을 초래한 주범이 일본의 패권적 야욕이었듯이 21세기 역내 평화와 한국의 사활적 이익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중국의 패권적 야망과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한 강압적 팽창 정책에서 온다.

둘째, 쿼드가 실체를 갖추기 전에 참여하여 목표와 방향, 원칙과 운영체제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 쿼드가 지난 12일 정상회의로 격상되긴 했으나 아직은 중국의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핵심 4국 간의 협의체에 불과하며 추구할 목표와 방향도 아직 원론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한국의 참가 여부와 무관하게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안보 질서 수립을 주도할 구심점으로 발전할 것임은 분명하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남중국해와 인도양 해상 수송로는 한국 경제의 명줄이다. 우리의 국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 한국이 배제된 자리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스스로 변방으로 전락하고 화를 자초하는 길이다. 더구나 유사시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줄 나라들이 우리의 사활적 국익과 관련된 논의를 하는 모임이라면 당당히 참여하여 발언권을 행사해야 한다.

셋째, 미국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중국의 힘과 위협을 과대평가하여 과잉 대응하는 것을 견제하는 데도 쿼드는 도움이 된다. 쿼드에 참여하는 역내 국가들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도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과열되어 자칫 군사적 대결과 충돌로 비화할 위험성을 우려하고 미국의 무리한 대중 정책에 끌려다니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쿼드 참여는 일본·호주·인도와 함께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적절히 순화하고 중심을 잡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끝으로 쿼드 참여는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leverage)를 강화한다. 국제 관계에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상대방의 선의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움직일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안보 이해관계가 구조적으로 대립하는 중국에 대한 한국의 레버리지는 중국이 원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고 안보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나라와 공조할 때 더 커진다. 중국의 각개격파 전략에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 대항하기는 어렵지만 일개 국가에 대한 경제 보복을 모든 쿼드 참가국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하여 공동 대응하면 승산이 있다.

레버리지를 포기하는 것은 굴종을 자초하는 것이다. 중국의 반발과 보복이 두려워 굴종과 예속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쿼드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자주 독립과 자존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인도·태평양 안보 질서 형성의 주체가 될 것인지, 힘이 지배하는 지정학적 게임에 운명을 맡기는 객체로 전락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진실의 순간을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안목과 외교력이 혹독한 시험대에 서 있다.

[조선일보,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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