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바이든, 北·中 위협에 ‘동맹 대응’ 중시 … 文정부에 근본적 질문 던질 것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17년 그의 회고록에서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언급한 ‘행복의 조건’을 인용한 적이 있다. “할 일(something to do)이 있고, 사랑할 사람(someone to love)이 있고, 뭔가 희망을 걸 것(something to hope for)이 있어야 한다.” 지난 4년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초기엔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국인들은 할 일을 잃게 됐고, 진영이 갈라져 서로를 증오하게 됐으며, 희망을 걸 수 있는 미래를 잃게 됐다. 바이든 당선인은 “양분된 미국을 하나로 합치고 국제사회로부터 다시금 존경받는 미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미국을 재통합해 행복의 조건을 만들고 국제질서를 올바른 방향으로 주도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게 됐다.

바이든 당선인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liberal internationalist)’다. 2차 세계대전 후 다자협력, 자유무역, 민주적 가치를 중심으로 유지돼온 국제질서를 재건하겠다는 것이 그의 공약이다. 양자 관계, 보호무역,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비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illiberal nationalist)’인 트럼프와 다르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큰 수혜자 중 하나인 대한민국으로서는 그의 정책 기조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 역시 국익을 수호하는 미국의 지도자다. 동맹이라고 모든 국익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 대중 ‘봉쇄’에서 ‘변환’으로

바이든 당선인은 올해 초 외교·국제관계 전문매체인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왜 미국이 또다시 주도해야 하는가: 트럼프 이후 미국 외교정책 구하기(Why America Must Lead Again: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 제하의 글에서 “기후변화, 비핵확산, 보건·안보 등과 같은 이슈에 관해서는 중국과 협력하겠지만, 중국의 일탈 행위와 인권침해 등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동맹국 및 협력국과 힘을 합쳐 연합전선을 구축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미래를 결정할 (아·태) 지역에서 호주,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과의 관계에 재투자하고 인도에서 인도네시아까지 협력관계를 심화시킴으로써 북아메리카와 유럽을 넘어 민주적 우방국들과의 공동능력(collective capability)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핵심 키워드는 중국의 행태 변화 및 동맹국과의 연대다. 트럼프의 대중 정책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억제하고 경제적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실현이 불투명한) ‘봉쇄전략(strategy of containment)’이다. 반면 바이든의 정책은 중국과 ‘경쟁적 공존’을 하면서 잘못된 행태를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변환전략(strategy of transform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행태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미국과 동맹국 및 우방국과의 연대를 강조한다. 범지구적인 이슈나 공통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협력하면서 군사적으로 팽창하고 미국의 기술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이 그 태도를 바꾸도록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 중국 배제 ‘한·미 기술동맹’

그런데 중국을 압박하는 데 동맹국들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점이 우리에겐 큰 도전이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는 게 주 임무인데, 중국을 견제하는 데까지 동맹을 이용하려 한다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더욱이 바이든은 ‘글로벌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민주국가 연합(democratic coalition)’을 만들어 중국을 상대로 ‘가치 전쟁’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이 중국 눈치를 보며 민주국가 연합에 들어가지 않을 경우 미국은 한국을 중국 편으로 간주할 것이다.

따라서 차기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같은 문제는 비교적 쉽게 매듭지을 수 있지만, 한·미 동맹의 존재 이유 즉 북한 및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는 데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할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같은 돈 문제보다 훨씬 어려운 전략적 공조 문제가 다가오는 것이다. 바이든은 유세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처럼 동맹을 겁박하지 않겠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철수를 연계하지는 않겠지만, 동맹이 외부의 전략적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못할 때는 동맹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특히 5세대(G), 차세대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과 같은 정보통신기술 문제는 경제·군사·지정학적 함의가 혼재돼 있는 문제이므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배제한 ‘한·미 정보통신기술 동맹’ 결성을 위해 한국의 결단을 요구할 것이다.

◇ 북 비핵화 의지 확고한 바이든

북핵 문제에 트럼프 행정부가 취했던 접근법은 역대 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시도해 본 적이 없었던 하향(톱다운)식 접근법이었다. 정상들이 직접 만나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하향식의 단점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안을 찾기 힘들고 때로 성급한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하향식 접근법을 버리고 상향(보텀업)식 접근법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인의 자문단은 대체로 ‘비확산’ 그룹과 ‘비핵화’ 그룹으로 나뉜다. 비확산 그룹은 북핵을 우선 동결하고 북한이 가진 핵 능력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적절한 보상을 해 준 다음)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이루자는 입장이다. 비핵화 그룹은 핵 동결이 우선이지만 핵 군축으로 접근할 경우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또다시 말려들어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가 이뤄지게 되면 핵 협상이 공전할 가능성이 크므로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런데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TV토론에서 “북한이 핵 능력을 축소할 경우 김정은을 만날 의사가 있다”고 한 것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고, 이는 곧 비핵화 로드맵 합의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읽어야 한다.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부분적 비핵화와 대북 핵심 제재 해제 맞교환’이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협상 조건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바이든 차기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은 남북협력이나 종전선언 등에 연연할 게 아니라, 한·미 동맹에 역점을 두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 억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문화일보, 2020-11-1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11001030242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