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美 정국 복잡해도 북핵 제재는 불변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미국 대선 결과가 우려했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경합 주(swing states)의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일 개표 상황이 불리해지자 패배가 유력한 미시간 주 등을 상대로 개표 중단 소송을 제기했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승리를 확신한다고 발표했다. 2000년 대선의 ‘부시-고어 사태’와 같이 소송전이 벌어지고 연방대법원이 판단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짙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물론 북한까지도 공식 반응을 자제하며 숨죽이고 있다. 그만큼 미 대선 결과가 안갯속이라는 얘기다. 우리도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나 집권 여당이 어느 후보 일방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섣불리 워싱턴에 날아가 양쪽 진영을 다 만나며 ‘양다리 걸치기’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괜히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보다 우리는 북핵, 한·미 동맹 등과 관련해 트럼프와 바이든 후보의 정책 기조가 일치하는 부분을 파악, 우리의 입장과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시간을 쓸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모두 국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지도자다. 어느 한쪽이 우리에게 더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행동할 경우 자칫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한국의 국익에 트럼프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 ‘대법원 뒤집기’에 트럼프가 성공하는 경우를 전제로 움직인다면 최종적으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국익을 해치게 된다.

누가 당선되든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하기 전에 미국이 경제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은 없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저촉되지 않는 방향으로 남북 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트럼프나 바이든 모두 썩 내켜 하지 않는다. 비핵화와 연계되지 않은 종전선언은 두 후보 모두 반대한다. 트럼프가 이를 찬성했으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 한국과 중국의 정상을 불러 종전선언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이든 측 자문 그룹 그 누구도 현 단계에서 종전선언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적이 없다.

한·미 동맹은 트럼프나 바이든 모두 중시한다. 심지어 북한을 넘어 중국을 압박하는 데 한·미 동맹이 일정한 역할을 해 줬으면 한다. 트럼프가 한·미 동맹을 중시하지 않으면 왜 쿼드(Quad : 미국·일본·호주·인도 4각 안보협력체)에다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를 더하려고 했겠는가. 미국 혼자서 중국을 압박할 수 없으니 동맹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바이든 역시 기고문이나 연설문을 보면 북한이 아닌 중국에 대한 정책을 얘기할 때마다 빠짐없이 동맹국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미국이 동맹 및 우방들과 힘을 합쳐 중국의 행태를 완전히 바꿔 놓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트럼프와 바이든이 같다. 그러면 자연히 동맹국들 간의 관계도 중요해진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해법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질문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북핵과 한·미 동맹 모두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이제, 미국 대선 결과는 미국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다듬을 때다.

[문화일보, 2020-11-05]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105010731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