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北 위협에 南 자유 제한” ... 전단법, 韓 인권 도마 위에 올렸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대북 인권특사

정부·여당의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이 남북 주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국제사회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 특히 미국 민주당 인사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미관계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힐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자칫 군사독재 시절 한국의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제사회 시각에선 정부의 전단금지법 정당성 홍보 논리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남북관계 특수성 때문에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던 군사정권의 '한국적 민주주의'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텔 샤르트랑 캐나다 외교부(글로벌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대변인 성명 발표 하루 만에 한국의 전단법을 비판하는 공개 성명을 냈다. 그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캐나다는 의사 표현의 자유가 번영하는 사회의 초석이며, 사회의 인권 실현에 중요하다고 믿는다. 캐나다는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ICCPR)을 포함한 국제조약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인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위원장은 같은 날 중앙일보에 보낸 성명에서 "미 의회는 수년 동안 북한과 같은 폐쇄 국가에 사는 주민들에 편파적이지 않은 출처의 뉴스와 정보를 살포하는 것을 지지해왔다"며 "미 의회는 북한인권 재승인법(2017)을 통해 구체적으로 북한 주민에 USB 드라이브나 SD카드 같은 매체를 통해 북한 주민에 편견 없는 정보를 제공하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서명만 남은 한국의 전단법이 보조기억장치를 포함한 물품과 금전살포까지 최대 징역 3년형으로 처벌하겠다는 상황에서 미국의 북한인권법과 정면 충돌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엥겔 위원장은 "나는 남북간 신뢰구축과 외교 증진 노력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북한 인권을 증진하는 우리 공동 목표를 희생하면서 이뤄져야 한다곤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단법 입법으로 야기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파트너들과 협력하길 고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전단법이 국제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우선 바이든 정부와 한·미관계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자충수를 뒀다고 지적했다.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24일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지만 미국 민주당 행정부와 의회는 핵심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대외정책의 최우선에 두기 때문에 한·미관계 첫 현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를 공약한 상황에서 동맹 한국이 보편적 인권 문제에서 후퇴하는 걸 두고볼리 없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은 "미 의회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 문제(Korean Question)'란 이름으로 한국 내 인권과 민주주의 탄압이 연일 도마 위에 올랐던 상황을 연상시킬 경우 한·미관계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 압도적 다수인 더불어민주당이 오판했지만, 이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법안을 거부하거나 문제 조항을 재개정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유엔 인권기구에 정통한 국제법 전문가는 "전단법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상 기본권 제한에 부합한다는 정부 논리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주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며 제한할 수 있다"며 접경지역 주민에 대한 위협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이에 " ICCPR은 실제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공공안전과 질서, 타인의 기본권과 자유에 '매우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협'이라는 입증을 요구한다"며 "시민단체가 전단 풍선을 띄우면→북한이 군사적으로 도발하고→주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다에서 직접 가해자는 북한이기 때문에 전단이 주민에 대한 위협인지 논란의 소지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1998년 유엔인권이사회가 고(故)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1985년 민주화 관련 연설 및 전단 배포를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와 이적표현물로 처벌한 사건을 ICCPR 위반이라고 결정한 근거도 국가안보와 질서에 대한 명백한 위협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더 문제는 북·중 접경을 포함한 제3국에서 북한 주민에 보조기억장치 등 물품이나 재산상 이익을 배부한 행위도 처벌 대상에 포함한 조항들이다. 이는 "우리 국민에 대한 위협의 존재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어 100% 국제법 위반"이라고 한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대북 인권특사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한국의 전단 풍선 금지가 수반하는 외교정책적 문제들'이란 제목의 기고를 통해 전단법 제정 배경과 국제 사회의 비판을 조목조목 따졌다.

그는 "지난 6월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조롱 섞인 비난 담화를 발표한지 몇 시간 만에 한국 통일부는 전단 살포가 남북 간 긴장과 남측 지역에 환경 오염을 야기하기 때문에 금지한다고 밝혔다"라며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신속한 굴복의 진짜 위험은 한국의 대북 협상력은 약화하고 북한의 더 강경한 태도만 부추긴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킹 전 특사는 또 "6개월 만에 풍선 띄우기를 중단해 표현의 자유를 침묵시켰더라도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한다는 아무 보장이 없다"며 "그 보다는 한·미관계만 침식될 수 있으며, 과거 경험으로 볼때 북한은 또 다른 빌딩을 폭파할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꼬집었다.

[중앙일보, 2020-12-25]
https://news.joins.com/article/23954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