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럽, 신장 사태에 미·중 사이 줄타기인권 동맹가속

이재승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장 모네 석좌교수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는 와중에 유럽은 줄타기 외교를 시도해 왔다. 중국은 유럽연합(EU)의 둘째 교역국이었고, 양자 간 투자도 괄목할 만큼 큰 성장을 보였다. 유럽 국가들에 최대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적으로 미국과 공조를 하는 전략적 자율성은 최선의 선택으로 보였다. 20201230, 7년을 끌어온 EU와 중국 간의 포괄적투자협정(CAI)이 체결되었을 때만 해도 유럽의 줄타기 외교는 바이든 행정부 기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 협정을 통해 EU는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 보호를 강화하고, 중국은 미국과 유럽 간 틈새를 비집고 경제적 입지를 확보하는 상징적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인권 문제는 중국과 EU의 관계를 확연히 바꾸어놓았다. EU322일 중국 신장(新疆) 지역의 인권침해와 강제 노동 문제를 제기하며 중국 내 관련 인사와 기관들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중국은 발끈하고 나섰다. 주중 EU 대사를 초치하고, EU의 제재가 허위 정보에 의한 것이라며 경고를 날렸다. 애국주의에 기반한 중국 국내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신장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을 빌미로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이 중국 내 불매 운동의 타깃이 되었고, 신장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재를 공급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이키, 명품 브랜드 버버리도 중국 내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중국은 신속하게 보복 제재도 시작했다. 사상 최초로 유럽의회와 유럽위원회 정치안보위원회를 제재 대상 기관에 집어넣었고, 관련자들의 중국 입국을 막았다. 유럽 시민들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가장 높은 상징성을 부여받은 유럽의회와 EU 기관에 대한 제재는 유럽 내에서 외교적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 등 관련 회원국 정부가 중국 대사를 초치해서 강력히 항의했다. 유럽의회의 승인과 회원국 비준을 앞두고 있던 투자협정에 대한 반대 의견도 거세지면서 협정의 향배도 불투명해졌다.

 

유럽에 중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거대한 제조 기반인 동시에 시장이었다. 특히 유럽 경제를 이끌고 있는 독일은 무역을 통한 변화를 기치로 실용주의에 기반한 대중국 경제외교 전략을 구사해 왔다. 중국 역시 일대일로 전략을 확장하며 대유럽 투자를 대폭 증가시켰고, 경제적 지원에 목말라하던 중·동부 유럽과 남유럽, 발칸반도 국가들을 끌어들여 ’17+1체제를 발족시키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EU는 중국이 협상 파트너이자, 경제적 경쟁자이자, 체제적 경쟁자라는 삼원주의를 내세우며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그러나 유럽 내부에서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이미 신장 인권 문제 이전부터 불거져 나왔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 분야에서 빠르게 역량을 키우던 중국이 공격적으로 독일 기업을 인수하면서 위기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호언장담이 실제 투자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17+1체제의 결속력도 와해되고 있다. 작년 봄 코로나 확산 시기에 있었던 중국산 마스크와 긴급 경제 지원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반중 정서와 혐오감이 확대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 문제를 부각시켜 유럽의 외교적 균형추를 미국 쪽으로 돌려놓았고, 중국이 거칠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유럽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방위비 분담, NATO 체제, 이란 핵협정 등으로 감정의 골이 깊었던 미국과 유럽은 중국 인권 문제에 보폭을 맞추며 대서양 동맹 복원을 가속화하게 되었다. 또 프랑스를 비롯한 EU의 주요 회원국들은 인도-태평양 전략공조를 천명하며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굳히고 있다. 지금 부각되는 인권 문제는 기존에 유럽이 미국과 대립했던 이라크전이나 화웨이 5G 문제와도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보편적 인권은 유럽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가치이자,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보호와 더불어 외교의 중심축이다.

 

EU의 인권 제재는 중국만을 타깃으로 하지 않았다. 북한 인사들과 기관도 같은 인권 제재 대상에 포함되었다. 북한 역시 강한 어조로 EU를 비난하고 나섰다. 한때 북한이 가장 우호적인 서방 파트너로 여겨 온 EU는 핵실험 이후 멀어지기 시작했고, 수차례의 인권 제재로 인해 그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을 더 강력히 끌어당기며 인권 대립 구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인권 외교의 축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과 홍콩, 미얀마, 북한 등 주요 인권침해국들에 대한 가치 공유 동맹이 가시화되었다. 상황적 특수성을 강조하며 그간 회피해 온 북한 인권의 문제는 한국 외교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외교 전략도 이제 입장을 더 명확히 할 시점에 도달했다. 중간지대는 사라져간다. 그간 유럽은 대북 문제에서 미국을 대체하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아왔지만, 그 효용성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그 우회로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아주 제한적인 차원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가상의 통로였다. 이제는 오히려 인권과 법치, 비확산이라는 가치의 차원에서 더 완강한 유럽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한국의 새로운 범동맹외교의 틀이 절실하다. 그게 갖추어졌을 때 중국에 대한 더 많은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다.

 

[조선일보,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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