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맹 연대 실패한 조선되풀이되나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오는 30일 취임 100일을 맞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옥죄기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4자 안보협의체), 클린네트워크(반중 기술동맹), 민주주의 연대 강화 등으로 중국 입장에서는 차라리 도널드 트럼프 때가 나았다싶을 정도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19세기 말 열강의 다툼과 타협에 자국의 운명이 좌지우지된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막상 당사국 문제에 소외됐던 조선과 거문도사건을 소환하게 된다.

 

영국은 18851887년 근 2년간 거문도를 무단 점거했다. 이는 나폴레옹 몰락 이후 최강자로 부상한 영국과 러시아가 식민지 확장과 세계 질서 재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100년에 걸쳐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과정에서 생긴 사건이다. 부동항을 찾아 발칸반도를 통해 남하하려던 러시아는 영국에 패퇴하자 중앙아시아와 태평양으로 관심을 돌렸다. 18853월 러시아가 인도 접경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국경 마을을 점령하자 영국은 대러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응수했다. 전쟁이 터지면 국지전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로 확산할 거라 판단한 영국은 러시아가 동쪽의 지브롤터(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라고 부른 거문도를 선제 점령한 것이다. , 거문도는 두 고래 싸움에 터진 새우등이었다.

 

이 사건은 국제정세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던 고종(高宗)과 민비 및 대원군 세력이 조선독립권(국가안보)보다는 집권(정권안보)을 위한 사리사욕에 따라 열강을 끌어들였던 외교 실패와도 무관치 않다. 당시 패권국 영국은 청나라·일본·미국·독일 등을 결집해 러시아의 동아시아 남진을 집중 견제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고종과 민 씨 일파는 인아거청(引俄拒淸)’, 즉 러시아와의 밀약을 통해 청의 영향력을 줄이려 했고, 이를 알게 된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했다.

 

더욱이 영국은 러시아 저지 노력에 동참한다면 조선을 적극 지원한다고 했으나, 고종은 청이 조선의 종주국이라 교섭권이 없다고 했다. 이에 영국은 점령 사실도 한 달이 지나서야 청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선에 통보했고, 청나라 이홍장(李鴻章)의 중재 아래 러시아가 향후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거문도에서 철군했다. 결국, 인아거청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던 이른바 초월적’(비현실적) 선택으로 물거품이 됐고, 청의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만 더 심해졌다.

 

오늘날 가열되는 다자주의 탈을 쓴 미·중의 진영 경쟁은 그것이 내 편이 돼 달라는 러브콜이든 내 편이 돼라는 협박이든, 그사이에 끼인 모든 나라에 심각한 외교적·전략적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한국도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측면에서 구한말 영·러 대립과 매우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각에서는 현 국제 정세는 과거와 많이 달라 한쪽에 올인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고 미·중 간 중재역을 하는 초월적 외교를 통해 레버리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사드 보복이나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보듯이, 중국이 힘의 논리로 우월한(dominant) 지위를 차지하려는 행태를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설사 중국 입장을 배려한다 해도 중국이 우리를 동등한 파트너로 대해 줄 것 같지도 않다. 현재 우리보다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호주와 대만, 유럽 국가들도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동참하는 추세다. 국제 판세를 읽고 미국의 다자동맹 네트워크에 편입돼 잠재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외교적 선택을 한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동지(like-minded)국가에 대한 중국의 보복에 연대해 맞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만약, 조선이 대러 견제 연대에 참여했다면 나라를 잃어버리는 최악 상황은 면하지 않았을까? 러시아로서는 부동항 확보를 위해서라도 조선 병합을 탐낼 수밖에 없었지만, 영국은 자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러시아를 제어할 동맹연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한 일본은 영국에 적극 협조했고 동맹까지 맺었으며, 결국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쿠오바디스 한국 외교. 동맹과 실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꿰어찰 수 있는 지도자의 혜안과 전문가의 식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문화일보, 2021-04-15]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415010730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