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美中 줄타기 이제 그만한국 '安美經美'로 글로벌 전략 세워야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 국립외교원장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 처음 열린 한미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우선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 정상이 직접 마주 앉았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외교, 안보,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성과도 거뒀다. 특히 경제·기술 분야에서 맺은 양국 간 동맹은 한국이 주요 10개국(G10) 진입을 넘어 G5 국가로 성장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새 질서를 주도할 초석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재인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 쿼드 등 대중 다자연대에 부정적이었던 입장을 180도 변경해 사실상 미국 지지를 표명했다. 공동성명에서 한미 양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또한 태평양 도서국들과의 협력 강화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했다.

 

·중 경쟁에서 균형 내지는 전략적 모호성을 정책으로 삼던 문재인정부가 미국 편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왜 입장을 바꿔 그동안 금기시하던 미국의 대중 견제망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했는가. 세 가지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문재인정부가 정권의 정치적 유산으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북한 문제에서 바이든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의 성과를 이어 조기 미·북 대화에 나설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추진하는 다자간 연대에 확실히 줄 서는 대신에 대북정책에서 미국의 양보를 원했다고 본다. 문재인정부에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미국이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성명을 명기하고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로 언급한 점일 것이다. 또한 성 김 대사를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해 미·북 대화 재개에 나서는 모양새를 보인 점도 평가할 것이다.

 

둘째, 어려운 국내 백신 상황이다. 5~6월 백신 춘궁기로 인해 미국으로부터 긴급 백신 지원을 원했다. 백신 스왑을 통해 백신을 확보하려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은 백신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많은 국가 중에서 선진국인 한국에 백신을 제공하는 명분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미군과 연합 방위 체제하의 한국군 55만명에 대한 백신 지원을 약속했다. 물론 모더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간 백신 생산 협력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의 기술과 한국의 생산 역량을 결합한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해 중장기적으로 백신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한국 경제·산업계의 필요 때문이었다. 첨단 제품 분야에서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이동통신기술 등 우리 경제와 미래 먹거리가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에 여하히 포함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대만 TSMC가 최대 고객 중국과의 관계를 끊고 미국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공급망 동참 필요성이 절실해진 상황이었다. 현실은 우리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세계가 아니었다. 한국 기업의 44조원 투자를 단순히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에 확실히 참여하겠다고 한 것은 다행스러운 결정으로 한미 모두 윈윈하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아울러 한미 양국이 원전 분야에서 제3국 공동 진출 협력을 모색하기로 한 것도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선택이다.

 

특히 문재인정부는 미·중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쟁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선택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반도체와 5G, 차세대 이동통신(6G), 인공지능 등에 있어 한국은 미국 쪽에 확실하게 줄을 섰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양 정상은 해외 투자에 대한 면밀한 심사와 핵심 기술 수출 통제에 관한 협력 중요성에 동의했다. 바로 미국이 추진하는 클린 네트워크를 수용하는 내용이다. 첨단 제조 분야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회담은 지역 질서의 대전환기하에 우리 외교 방향을 결정 지은 중대한 회담으로 기록될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대중 다자연대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여겼던 한국이 호응하고 나섰다. 회담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미동맹이 한반도 군사안보 동맹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과 글로벌 차원의 경제동맹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추론 외의 요인도 생각할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동북아시아 균형자론을 주장하다가 중국 부상의 위험성을 알고 한미동맹 중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돌아섰던 전철을 문재인 대통령이 밟고 있는지 모른다. 가장 놀라운 반전은 대만해협에 대한 언급이다.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대 한국 정부가 가장 금기시했던 대만해협 문제를 한중 수교 이후 최초로 직접 언급했고 그것도 한미정상회담에서 했다. 당장 대만 외교부는 한미 공동성명과 관련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미 미사일 지침 폐지도 중국에는 기분 나쁜 일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한국 미사일의 사거리를 800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800로 제한한 이유는 인천에서 베이징까지 거리가 900이기에 중국을 위협하지 않도록 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거리 제한을 푼다는 것은 결국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또한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세계보건기구(WHO) 개혁에 협력하고 특히 코로나19 발병 기원에 대한 투명하고 독립적인 평가에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하에 놓인 WHO에 큰 불만을 갖고 있는데, 한국이 미국 입장을 지지한 셈이다.

 

중국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다. 대만, 일본이 돌아서는데 한국만 콕 집어 보복할 수도 없다. 더욱이 최근 미·중 첨단 기술 대립 시대에 반도체 등 한국의 중간재는 중국 경제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할 것이다.

 

[매일경제, 2021-05-24]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21/05/499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