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미동맹 확장깜짝 선회의 배경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지난 21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나온 공동성명은 눈을 의심케 한다. ·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한다고 비판받던 문재인 정부의 정상회담 결과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국 쪽에 다가서 있다. ·미 정상은 민주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는 물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염원하며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하고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 및 우주 개발 협력을 약속함으로써 한미동맹의 외연을 확장했다.

 

지난 318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 외교·국방장관(2+2)회담 직후에 나온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은커녕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조차 빠졌고, 420일 중국의 보아오 포럼 개최를 기념해 문 대통령은 개막식 영상 축사를 보냈다. 무엇이 이렇게 한두 달 사이에 문 정부의 입장이 180도 바뀌게 했는가? 해답은 백신북한이다. 임기가 채 1년이 안 남은 문 대통령으로선 백신 수급 불안으로 K-방역 성과를 날려 버린 상황에서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고, 남북대화를 2018년처럼 화려하게 재개할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것 같다.

 

그래서 한·미 백신 위탁 생산, 국군 장병 55만 명에 대한 미국의 백신 공급,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초한 대북 외교와 대화, 한반도 항구적 평화 정착, 남북대화와 관여 및 협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 등을 얻어냈다. 그 대신, 대만 문제와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지원 등 미국의 선호 메뉴를 거의 통째로 주었다. 문제는, 백신과 북한에 관한 성과물이 국민과 김정은 정권의 눈높이에 못 미칠 것 같다는 데 있다.

 

·포괄적 백신 파트너십을 통해 양국 제약사 간에 위탁생산 계약이 성사됐으나, 한국에서 생산됐다고 백신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는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 백신 특허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가 자유롭게위탁생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백신 생산 제약회사가 기술 이전을 해줘야 한다. 중장기적 프로젝트이고, 당장 11월 집단 면역 달성과는 무관하다. 그래도 한미동맹 덕분에 55만 장병이 백신 혜택을 보게 된 것은 다행이다.

 

북한은 20192월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 이후 줄곧 대북 제재 해제와 적대시 정책 중단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번 공동성명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의 전면적 이행이 담겼다. 북한 인권 문제도 포함됐다. 북한이 대북 적대시 정책의 근원지로 여기는 한미동맹이 약화되긴커녕 역대 어떤 보수 정부보다도 (최소한 수사적 차원에서는) 강화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얘기하지 않는 정상회담은 북한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전에 실무회담이 필요하다면서 대북특별대표로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했다.

 

지금까지 나타난 것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당장 북한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도록 대화와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고, ·미 관계도 북한이나 중국이 틈새를 파고들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내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기다리는 쪽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물론 이를 간파한 북한이 도발할 경우 상응하는 조치로 대응할 것이다. 따라서 문 정부는 남북 대화에 매달리기보다, 기왕에 틀이 잡힌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남은 1년 동안 대북 억제력 강화에 힘 쏟는 게 현실적일 것으로 보인다.

 

[문화일보, 2021-05-24]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524010731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