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바이든의 선택, 惡手인가 妙手인가

이신화(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 외교정책 레토릭은 "미국이 돌아왔다"이다.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단절하고 지구촌 이슈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글로벌 리더십의 귀환을 천명한 것이다. 그의 외교 기조는 크게 미국 주도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국제질서(LIO)의 복원, 동맹 중시 정책, 그리고 미·중 관계의 재정립으로 요약된다.
이제 7개월 정도 지난 바이든의 대외정책을 평가 내리는 건 시기상조이지만 "과연 미국이 어디로 돌아온(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국제여론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지금 미국은 트럼프 시기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계승하고, 반중(反中) 연합 특성을 띤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로 구성된 4자 안보대화)를 강화하는 등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민주주의 동맹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고 첨단기술 동맹을 결성해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중국 역시 다자기구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이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같은 지역 다자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개방성, 책임성, 상호성에 기반한 다자주의 협력 관행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 중국식 '다자주의 굴기'의 힘겨루기 속에서 본래 의미와 취지를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 강대국은 각자 호혜적 다자주의를 표방하는 듯하지만, 중국의 다자주의에는 미국이 없고, 미국의 다자주의도 중국을 배척하고 있다.

·중 양자택일의 압력에 처한 국가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국제 민심의 추이는 일단 미국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남중국해 문제, 한국과 호주에 대한 경제보복, 홍콩·신장웨이우얼 문제 등에서 보듯 중국이 국제법과 규범을 무시한 채 자국 이익과 입장 투사를 위해 군사·경제적 힘을 통한 포식자적 행동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국제적 불신과 비판이 커졌다. 중국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불신도 미국, 일본 및 서방국가들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제조업의 본국 회귀) 정책을 재촉했다.
그러나 팬데믹 위기 속 2020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이뤄진 곳은 중국이었다. 수십 년간 1위를 고수해온 미국을 제친 것이다.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정치·군사적 이슈뿐 아니라 중국의 비시장 정책과 관행에 대해 입을 모아 강경 입장을 표명했지만, 정작 공동성명에는 공통된 과제에서 공동 이익이 있을 경우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러한 결정에는 프랑스와 독일 등 미국의 전통 우방국들 의중이 반영됐다. 리쇼어링이나 기술적 디커플링(탈동조화) 정책을 통한 미국 주도의 LIO가 자칫 정치적 수사에 그칠 우려가 기우만이 아닌 이유다.
이러한 가운데 미군 철수에서 비롯된 아프가니스탄의 아비규환을 목도하면서 세계는 지금 바이든의 '돌아온 미국'이 재건하려는 자유주의 패권 질서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동맹들과 충분한 사전 조율이 없었던 철군 결정과 탈레반의 급속한 아프간 장악으로 인한 대혼란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국익이 없는 곳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고, 아프간 미래는 아프간인들의 권리와 책임이라고 했다. "동맹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국제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미국의 리더십을 재정립하겠다고 천명한 몇 달 전 취임사가 무색해지는 항변이다.
미국 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국제적 신용이 찢겨버렸다는 비판과 더불어 미국 리더십과 이미지 추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지난달까지 미국인 70% 이상이 철군을 지지했고, 이번 사태가 '사이공탈출 시즌2'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철군 지지율은 여전히 절반을 웃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국내 여론 추이가 철군 단행의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국내외적 리스크와 비난을 무릅쓰고 '어차피 못 이길 전쟁'을 끝낸 것은 외교 분야 백전노장인 바이든 대통령의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복기해보면, 20년 전 9·11 테러가 발발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거친 산악지형 국가의 고립분산적인 특성, 이슬람 전사들의 끈질긴 저항, 복잡한 종족과 종파 갈등이 얽혀 있는 현지 상황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테러와의 전쟁을 감행했다. 미국과 나토연합국은 개전 한 달 만에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불량국가들을 민주주의로 전환시켜 세계 평화를 이루겠다는 미국 네오콘의 구상에 따라 아프간 땅에 자유를 심고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무리한 목표를 추구하면서 지루한 소모전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더욱이 부패하고 무능한 아프간 정부와 오합지졸의 정부군에 대한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2008년 말 부통령 시절 카불 방문 이후 바이든은 '끝이 없는 전쟁 종식'을 꾸준히 주장했고, 이번에 그 개인적 소신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와 탈레반의 승리로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약화될지, 아니면 도약하는 계기가 돼 미국 패권질서가 강화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다음의 몇 가지 점에서 국제정치 측면의 함의를 도출해볼 수 있다. 첫째, 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새삼 실감하게 한 이 사태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대만,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콕 집어 동맹의 우려에 대해 진화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안보공약에 대한 동맹국들의 불신과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역으로 동맹의 결집·강화를 통해 대중 견제전략을 구사하려는 바이든의 외교전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둘째, 아프간 사태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중국에 가장 큰 반사이익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가 재건사업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탈레반과 일대일로 사업 중 하나인 이란~중국 송유관 연결에 지리상 중간지대인 아프간의 협력이 필요한 중국 사이에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첨단무기 핵심 소재인 희토류를 포함해 3조달러 가치의 아프간 광물자원 개발에 중국이 적극 참여한다면 미국 경제뿐 아니라 안보에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또한 중국은 민주주의 동맹과 인도·태평양전략 등으로 중국을 옥죄는 미국의 압박에 맞서 친중 성향의 파키스탄, 아프간 및 반미 국가 이란으로 이어지는 반미 연합지대 형성이라는 정치적 성과도 얻게 됐다.

아프간과 신장웨이우얼의 국경선이 맞닿아 있는 것은 중국에 걱정거리이긴 하다.
중국 정부의 탄압을 규탄하며 지하드(성전)를 선언한 위구르족은 같은 수니파 이슬람 조직인 알카에다, 탈레반 등으로부터 훈련을 받아왔다. 탈레반은 중국을 '친구'라고 지칭하며 위구르 반군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슬람 이념의 통치체제를 구현하려는 탈레반이 '종교는 아편'이라고 묵살하는 공산주의자들과 언제까지 협력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만약 탈레반이 위구르를 지원한다면, 중국이 '제국의 무덤'인 아프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7월 말 아프간에서 세력을 확장해가던 탈레반 수뇌부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동한 것에 대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긍정적인 논평을 했다.
셋째, 카불 함락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어제의 위협이 아닌 오늘의 위협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중동의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의 경찰' 역할 거부 모두 중동에서 빠져나와 아시아·태평양 혹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한다는 초당파적 대전략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아프간에서 발을 빼고 9·11 테러의 시대에서 벗어나 인도·태평양에서 더욱 공세적이고 대담해진 중국과의 경쟁에 총력을 기울이려는 것이 바이든의 계획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미국이 대중 견제에 집중할 수 있을지다. 미국의 공백이 오히려 중동정세 혼란과 테러 위협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탈레반의 아프간 탈환은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하마스와 같은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의 재도약으로 이어지고, 서방에 대한 대대적인 테러 공격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아시아 중시 전략은 중동문제와 반테러전에 번번이 발목을 잡혀왔다. 아프간을 둘러싼 상황이 내전이나 테러 등으로 심각해진다면 어제의 위협이 여전히 오늘의 최대 과제가 돼버려 대중 견제에 집중하면서 패권적 지위를 고수하려는 바이든의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넷째, 설사 미국의 탈중동 전략이 성공한다 해도 아프간에서 여성 및 반대파들에 대한 인권탄압과 학살이 자행되고 인도적 위기 상황이 가중된다면, 미국은 아프간을 버리고 인권을 포기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인권, 다자주의 국제 질서를 표방하며 글로벌 공공재 제공과 리더십 발휘를 약속한 바이든 행정부에 가장 큰 도전이다. 지난 수십 년간 아프간은 세계 3대 난민 배출국으로 현재 유엔 추산 아프간 난민은 2600만명에 달한다. 더욱이 이미 시리아 난민사태 등으로 난민 수용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과 국내적 불안이 심각한 터키, 그리스, 그리고 유럽 국가들로의 '아프간 엑소더스'는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이 경우 미국의 '선택적 귀환'은 적어도 중국을 비롯한 비자유주의 국가보다 도덕성, 인권 보호, 규범 면에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팍스 아메리카 질서를 유지하려는 소프트파워 전략에서는 실패이다.
향후 상당 기간 지속될 아프간 철군의 후유증으로 미국의 리더십과 LIO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국제 질서가 등장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지난 70여 년간 LIO 속에서 시장경제, 자유무역, 민주주의, 다자주의를 지향하며 성장과 번영을 구가한 국가들이 여전히 LIO를 보완·발전시키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국제적 공감대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극명해질 미·중 갈등의 회오리 속에서 우리의 전략적 선택이 더욱 분명해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매일경제, 2021-08-24]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8/819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