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휴먼아시아 서창록 대표 - 인권은 시끄러워야 한다

-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코로나19,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권은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그동안 우리에게 인권은 너무나 당연했다. 당연한 것엔 관심이 모이지 않고, 당연한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당연한 것을 새로이 말해보려 한다. 인권에 대한 시끄러운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와 관련한 얘기를 나눴다. 한국 최초의 UN 자유권위원이자 인권전문가인 서창록 휴먼아시아 대표를 만났다.

 

수식어가 굉장히 많다. 어떤 일들을 맡고 있나.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이자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위원이자 휴먼아시아 대표이자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이다. 대법원 양형위원, 국가인권위원회 국제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어느 순간 인권 전문가가 됐다. 사람들이 휴먼라이츠 가이(human rights guy)라고도 부르는데, 그 말이 개인적으로 듣기 좋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국내 인권 전문가가 적은가.

서구 국가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최근에 학자뿐 아니라 활동가 등 한국인권학회 회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각 지자체, 대학교에 인권센터가 생기는 등 인권 커뮤니티도 커지고 있다.

 

지금 인권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대화, 디지털화 속에서 사회의 가치 또한 빠르게 변했다. 그 안에서 조정 과정이 부족했다. 갈등이 많은 상황이다. 지금 인권에 대해 얘기하고 고민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의 사회가 될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인권만 그대로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권이 세계의 관심사가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인권 문제는 항상 존재했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처럼 큰 사건은 공기처럼 존재하던 인권을 눈으로 보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는 인권과 관련해 어떤 논의를 촉발했나.

코로나19 판데믹 초기, 미국과 유럽엔 노마스크 시위가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는 전통적으로 굉장한 자유권이고 보장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코로나19를 통해 알게 됐다. 코로나19 같은 집단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의 자유권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어떤가.

러시아 침공으로 인한 인권 침해와 관련해, 국제법에서 여러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제법은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 서방 국가들도 러시아에 여러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랬을 때, 피해를 보는 것은 러시아 국민들이다. 결국 러시아 국민들도 전쟁의 피해자다. 국제법이 전쟁 책임자 개인을 처벌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인권을 대하는 규범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로 크게 바뀔 것이다.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확히 인권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차별 문제에 관심을 뒀었다. 80년대에 제3세계 운동이 한창이었고 종속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국제사회 불평등에 목소리를 내려면 좀 더 큰 세상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길에 올랐고, 우연한 기회에 제네바로 인턴을 갔다.

 

그곳에서 인권을 만난 건가.

사실 당시엔 유엔에서도 인권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다. 인권이 유엔의 중요한 목표였지만 제도는 미흡했다. 1993년에 들어서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만들어졌고, 인권이사회(HRC)2006년에 만들어졌다. 본격적으로 인권운동을 시작한 건, 북한 탈북자들을 만나고부터다. 90년대 북한 대기근으로 수십만 명이 탈북했다. 주로 중국으로 갔고,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도 많이 들어왔다. 그때 북한의 실상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했나.

남한의 인권 활동가들이 북한 인권 단체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북한 인권 실태를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했다. 유엔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제네바를 포함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순탄하지 않았을 것 같다.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결의안도 만들었다. 하지만 북한 주민 인권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북한 인권 운동이 정치 싸움으로 번졌다. 좌절감을 느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북한 인권 활동의 방향으로는 인권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대표를 맡고 있는 휴먼아시아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휴먼아시아는 어떤 단체인가.

동아시아에서 인권 활동가 네트워크를 만드는 사업을 한다. 아시아 지역의 인권 보호 기구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를 위해 청소년 교육, 인도·지원 사업, 개발·협력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사례로 말하자면, 필리핀에서 박해 받는 소수민족들을 위한 교육 지원 등이다. 인권 의식을 높이고, 지역적 차원에서 인권 기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시민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있나.

유럽, 미국의 인권법원은 국가가 나서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불가능하다. 중국, 일본, 한국, 북한 등이 모여서 논의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사회운동을 통한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각국 시민사회 내부에서 자정 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방대한 작업이라 유엔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유엔과의 연계를 위해 보고서까지 썼다고 들었다.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에서 보고서 하나를 쓰기란 쉽지 않다. 제안서를 만들고 18명의 자문위원의 합의를 얻어야 한다. 그걸 47개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해야만 연구가 진행된다. 자문위원을 설득하고 벨기에 등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통과했다. 2년에 걸쳐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메리카 지역의 인권법원을 연구하고, 아시아 지역 인권법원의 필요성에 대해 썼다.

 

효과가 있었나.

굉장히 고무적인 일인데 국내에서도 잘 안 알려졌다. 관심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보고서가 있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직원들도 국가별 정례인권 검토(UPR)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할 때 한 번씩 들여다본다.

 

국가별 정례인권 검토도 생소하다.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만든 제도다. 모든 유엔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북한, 중국 포함해서 모든 국가가 46개월에 한 번 인권 리뷰를 받는다.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행위라는 비판도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제도다. 지금 북한은 스스로 장애인 인권의 천국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 협약에는 북한도 중국도 가입했다. 그렇다면 장애인 인권 협의 기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관련해 토의도 하고, 이를 시작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결국 인권은 합의와 타협의 문제인 것 같다. 인권은 절대적이란 인식 탓일까. 타협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다.

인권은 공기 같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신경을 안 쓰는 경향이 있다. 인권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과 시각은 다르다. 그 다름에 대해 나누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엔 인권에 대한 해석이 충분치 않다.

 

세계인권선언 첫 문장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쓰여 있다. 인권 전문가의 눈으로 새로이 해석해본다면?

중요하고도 논쟁적인 문장이다. 해석은 시대에 따라 사람마다 달라진다. 예컨대, ‘모든 사람의 범주에 부르주아 남성만 포함되던 시대도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도 포함해야 한다는 새로운 논의와 합의가 이뤄졌다. 지금은 또 그때와 다르다. 모든 사람의 범주에 성소수자도 포함되어 있는가. 모두의 인식이 같은가. 어떤 사람이 빠져 있는가. 모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찾아야 하는 문제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자유와 평등을 모두 중요한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자유와 평등을 일견 상충하는 개념이라 소개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자유와 평등도 이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자유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서구의 전통으로, 평등보단 자유에 방점이 찍혀 있다. 완전한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는 모두가 자유를 가진 것이 곧 평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의 평등 또한 중요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에 스마트폰은 포함되는가. 디지털 사회에서는 정보 접근성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된다. 결국 상황에 따라 인간다움의 기준도 달라지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인권에 대한 해석도 변해야 한다.

 

인권에 관한 논의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야 할까.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가는 과정에서는 개인주의의 확장이 중요했다. 때문에 개인주의가 핵심적인 가치였다.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 사회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만큼 공동체주의가 더 중요해져야 한다. 우크라이나 현지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전 세계의 관심이 우크라이나에 쏠려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동체주의로 인권을 해석해본다면?

결국 배려다. 물론 인권에 있어 배려라는 단어를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지금으로선 배려가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인권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기 결정권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을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인권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선, 자기 생각과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도 그 사람의 의견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게 배려다.

 

인권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의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 사이의 정치라는 건 항상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럴수록 타인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 한다. 남의 생각을 존중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남의 처지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인권에 대해서 시끄럽게 얘기해야 한다. 그게 인권을 증진하는 문화가 될 것이다.

 

 

[Book Journalism, 2022-08]

https://www.bookjournalism.com/talks/3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