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휴전 70년, 北의 핵위협에 南은 ‘핵옵션’으로 고민”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외
《독자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 공유 아니면 미국 확장억제 강화? 북한의 핵 선제공격 위협에 대응할 ‘핵옵션’ 논란이 연초부터 뜨겁다.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은 신년 좌담회를 열어 휴전 70년을 맞은 올해 한반도 안보 상황을 점검했다.》
북한은 사실상 단거리 미사일인 초대형방사포 발사 도발로 한 해를 시작했다. 북한 김정은은 전술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고, 남한에 대한 핵 선제공격 위협도 서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미중 갈등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시욱)은 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년 안보 좌담회를 가졌다. 대담에는 고재남 유라시아정책연구원장(전 국립외교원 교수),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사회는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이 맡았다.
● 대남 선제 사용까지 공언한 북핵 위협
구자룡 소장=북한은 남한을 향해 전술핵을 선제 공격용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급박하고 실제적인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윤석열 대통령은 ‘일전 불사의 결기’로 응징해야 한다고 했다.(11일에는 ‘북 도발이 심해지면’이라는 조건을 걸었지만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 옵션도 언급했다.)
전성훈 전 원장=북한의 전술핵은 대남용이다. 지난해 9월 8일 법으로도 정했다. 올해 정전협정 체결 70년을 맞은 한반도는 전례없는 안보 위협에 놓여 있다.
고재남 원장=북한이 지난해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선제 핵사용을 구체화하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는 전술핵 선제 사용 위협으로 응수했다. 올해 남북 간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계속될 것이다.
박철희 교수=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맞서는 상황을 이용해 북한은 비핵화 의지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을 거라고 국제사회가 믿게 만들고 싶어 한다.
전=북한이 지난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은 섣불리 한반도에 들어오지 말라고 미국에 보내는 강력한 신호다. 북한은 2021년 전후부터는 한반도에서 사용할 핵 및 투발 수단 개발에 매진했다. 설마 북한이 남한에 사용할까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지난해 집대성해서 보여줬다.
고〓지난해 발사한 90여 차례 미사일 중 39차례는 신형 미사일이라고 한다. 이들 미사일 개발 및 발사가 2018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더욱 집중적으로 개발한 것인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러가 유엔 안보리 제재를 무력화하는 기회를 활용하는 전략에서 나온 것인지 볼 필요가 있다.
전〓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지난 30년간 지속되어 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중·러와 미국 간 강대국 경쟁 환경 등이 촉진 요인이 됐다. 도발을 해도 중·러가 막아준다고 김정은은 생각하는 것이다.
구〓올해는 휴전협정 70주년,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이다. 어떤 도발이 있을지.
전〓7차 핵실험 가능성도 있지만 김정은의 속내에는 미국과 대화 물꼬를 트는 것도 있다고 본다. 김정은은 미국과 핵을 바탕으로 대등하게 관계를 설정하는 지도자로 남고자 할 수도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계속 북한에 대화하자고 얘기해 왔기 때문에 북한이 뭔가 대화 메시지를 던지면 물게 되어 있다. 그러면 핵군축 협상이 시작된다.
박〓북한이 지난해에는 한반도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미국이 좀 더 관심을 갖도록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관심은 우크라이나 전쟁, 그 다음은 중국과의 전략적인 경쟁이다. 북한이 모두가 놀랄 만한 도발을 하지 않는 한 우선순위를 많이 높일 것 같지 않다.
고〓지난해 10월 미국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도 북한은 한두 줄밖에 안 나와 있어 쉽게 핵군축 협상에 나설 것 같지 않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답습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박〓‘전략적 인내’에서 나아가 ‘전략적 무관심’인 것 같다.
구〓북한은 2017년 후반 6차 핵실험 후 이듬해 새해 벽두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선언하고 이어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나섰다.
박〓북한이 대화에 나온다면 핵군축에 응하라는 것인데 핵군축 협상으로 비핵화를 포기하는 순간 남북은 핵 불균형 상태에 들어간다.
전〓미국은 비핵화를 목표로 대외적으로는 핵군축 협상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북한이 만나자면 만날 수도 있다.
구〓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고 투발 수단도 다양해져 북핵 대응을 위한 이른바 ‘핵옵션’ 논의가 분분하다. 윤 대통령은 연초 언론 인터뷰에서 확장 억지 이상의 미국 핵전력 한미 공동 기획 연습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전〓기존 확장억제만으로는 북핵 위협으로 불안한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은 맞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언급한 것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술핵을 탑재한 미군기로 외곽 경호 비행을 하는 정도다. 미국과 핵공유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전술핵탄두가 배치된 5개국 외의 국가들이 하는 훈련이다. ‘스노캣(SNOWCAT·Support of Nuclear Operations With Conventional Air Tactics)’이다.
구〓스노캣은 한미 확장억제 개념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나?
전〓미국의 B50이나 B2 전략폭격기와 한국 전투기가 공동 훈련하는 것이 그것이다. 핵 없는 우리나라 전투기가 할 수 있는 것은 핵을 탑재한 전폭기를 외곽에서 경호하는 것이다.
박〓윤 대통령 발언은 실제로 북한이 핵을 쏜다고 했을 때 구체적으로 양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이 핵을 실제로 사용했을 때 어떻게 공동 작전을 실행할 것인지 기획하고 훈련을 해보자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고〓김정은이 대놓고 남한을 대상으로 전술핵을 개발, 사용하겠다고 하니 이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구〓어떻든 스노캣은 북핵에 대응해 핵무장도 필요하다는 국내 여론이 70%까지 올라온 것에 비하면 한참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박〓이제 핵무장도 최후의 수단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핵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는 핵잠수함, 폭격기, ICBM 등 투발 수단이 너무 다양화되어 있어 굳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가져다 놓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 소모전 가능성도
구〓우크라이나 전쟁은 올해도 종전의 실마리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가 지난해 30만 명에 이어 50만 명을 추가 징집하겠다고 밝혔다.
고〓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미국의 책임도 있다. 쿠바 미사일 사태는 물밑 협상을 통해 핵이 동반된 제3차 세계대전 위기를 피한 성공적인 위기관리로 꼽힌다. 반면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러 간에 가장 실패한 외교 사례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고조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동부 돈바스 문제 등을 협상으로 풀기 위해 푸틴과 가까운 재벌을 러시아에 보내기도 했다.
구〓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좀 더 세심한 위기관리가 있어야 했다는 건가.
고〓젤렌스키 이전 포로셴코 정부에서 나토 가입을 명문화하고 러시아어 사용을 제한하는 등 반러 조치가 나왔다. 2021년 7월에는 흑해에서 나토 주도의 군사훈련이 있었다. 푸틴 대통령이 레드라인으로 여기는 조치들이 초래할 위험 요인을 미국은 간과했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푸틴이 전쟁 수렁에 빠져 러시아가 약화되고 유럽에서는 대러 나토 동맹을 강화시키려는 전략적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구〓지난해 하반기 미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협상을 중재하는 듯한 움직임도 있었는데.
고〓푸틴은 이미 점령한 지역을 우크라이나가 포기하면 협상할 의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젤렌스키가 개전 300일을 기념해 미국에 가서 바이든과 회담하고 의회에서 연설한 뒤 패트리엇 미사일 등 대규모 군사지원을 받아왔다. 비슷한 시기 푸틴은 핵전투태세 강화를 지시하고 러시아 국방장관은 장기전을 준비하는 정규군 150만 명으로의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전쟁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장기전으로 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우크라이나 전쟁은 소모적인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참상을 겪지만 미국 등 서방은 빨리 종결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 러시아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서유럽을 단결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구〓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식 정전 모델’로 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전〓6·25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은 종전을 원하지 않았으나 강대국들의 요구로 이뤄졌다. 우리가 정전협정 모델 케이스라고 하지만 전쟁은 끝났어도 분단이라는 숙제를 남겼다. ‘안 좋은 모델’이다.
고〓크림반도까지 회복한 정전협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크림반도가 문제 되면 푸틴이 핵 사용을 고려할 수도 있다.
전〓푸틴이 정말 핵을 쓰기는 어려울 수 있다. 독일 때문이다. 러시아가 핵을 쓰는 순간 독일의 핵무장 명분이 생긴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자 독일이 이게 기회다 싶게 굉장히 무섭게 움직였다.
●미중 갈등 휴지기? 또 터질 화산
구〓3기 연임으로 장기집권 기반을 굳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국내 경제 문제 처리를 위해 주변국 관리에 나서고 미중 갈등도 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박〓중국은 올해 경제 둔화, 코로나 확산,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불만 표출 등 내부적인 문제가 많다. 미국과 확전을 피하고 속도 조절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공화당 민주당 인사 가릴 것 없이 중국을 견제해 경쟁에서 질 수 없고 적어도 중국의 추격, 발전 속도를 둔화시켜야 한다는 점에 합의가 되어 있다.
전〓미국은 2년 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중 강경 자세는 더 강해져 중국 국민과 공산당(CCP)을 분리한 뒤 CCP의 무릎을 꿇리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게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세였다. 지금 미중 갈등은 약간 숨고르는 휴지기라고 볼 수 있지만 밑에서 끓고 있다. 언제 또 화산이 터질지 모른다.
구〓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만과 중국 사이에 긴장이 높아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박〓최근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너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지 말자는 정서가 표출된 것이다. 대만해협은 한국의 에너지 및 해양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주 깨알같이 살펴봐야 한다.
전〓대만에서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무엇보다 북한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힘이 분산되는 호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구〓중국이 주변국과의 갈등 관리에서 우선적인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다. 윤 대통령이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도 발표했다.
박〓중국은 미국이 동맹국과 민주주의 네트워크를 다시 짜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제일 약한 고리로 볼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한국형 인태 전략은 중국과 협력은 하지만 중국의 ‘위성 궤도(orbit) 국가’는 안 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고〓중국과의 관계에서 정권교체에 흔들리지 않는 내부 원칙을 세워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칩4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가, 나토 정상회의 참여 등은 우리 갈 길을 가면서 중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구〓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높아지면서 일본과의 안보 협력 필요성은 높아지는데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도 많다.
박〓일본이 보통국가화의 흐름으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북한과 중국에 대한 대항인데 우리에게는 자꾸 위협으로 비친다. 일본을 과거사 중심으로 보면서 적대국처럼 여기는 것은 우리의 착시 현상이다.
고〓징용 보상 문제는 국가가 힘이 없을 때 생겨 국가 잘못이었다고 국민들을 설득한 뒤 배상을 하고, 한일 관계는 미래 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일본이 국내총생산(GDP) 2%로 방위비를 늘려 군사력을 키우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할 말이 없다. 북한 미사일이 영공을 지나가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나라가 어디 있나. 다만 한미일 군사협력 틀에서 이뤄지더라도 일본이 어떤 수준을 넘어갈 때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은 한국 영토이기 때문에 일본이 적기지에 반격한다는 명분으로 북한에서 작전을 한다고 해도 우리와 협의하고 반드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동아일보, 2023-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