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중국·한국 등 싹쓸이했다”…개도국 온실가스 배출권 어떻길래
- 정서용 (고려대 국제대학 교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교토의정서에서 채택했던 청정개발체제(CDM) 사업.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재생에너지 등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투자하고, 거기서 얻은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투자한 쪽에서 가져가는 제도다. 감축량은 '배출권(CER)'이란 형태로 거래되기도 한다.
이런 CDM 사업을 진행한 결과, 중국을 비롯해 한국·인도·브라질 4개국이 경제적 수익의 90% 이상을 차지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파리 기후협정에 따라 추진되는 유사한 사업에서는 저개발국가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과 중국 홍콩대 선전(深玔)연구원 연구팀은 최근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 온라인 학술지(PLOS)의 '기후(Climate)'에 CDM 사업과 관련한 논문을 발표했다.
79개 개도국이 유치한 3311개 CDM 프로젝트와 관련된 1만 개 이상의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를 분석했다. 전체 CDM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CDM 프로젝트는 8206개인데, 배출권이 발행된 프로젝트 중에 사업이 종료된 것만 골라서 분석했다.
3311개 프로젝트 성공률 84%
연구팀은 2005년에 첫 CDM 사업이 시작된 이래 지난해 9월까지 기후변화협약 부속서 I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 즉 개도국에 모두 1,620억 달러(약 211조 원)의 관련 자금이 투자된 것으로 분석했다.
3311개의 CDM 프로젝트를 종합했을 때, 당초 계획에서는 24억4400만톤을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는 이보다 16.4% 낮은 20억4300만 톤 줄인 것으로 연구팀은 평가했다.
연구팀은 한국의 CDM 프로젝트 60개를 들여다봤는데, 이 중 17개만 해외 양자-다자간 프로젝트였고, 나머지는 국내 자체적으로 진행됐다. 계획된 1억6714만 톤보다 4.3% 더 많은 1억7435만 톤을 줄인 것으로 평가됐고, 중국은 달성률이 87%로 평균(84%)보다는 높았다.
산업체에서 배출하는 수소불화탄소(HFC)와 아산화질소(N2O)를 감축하는 프로젝트는 79개에 불과했지만, 실제 감축량에서는 8억3500만톤으로 41%를 차지했다. 이 79개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전체 감축 성공률은 84%에서 74%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HFC와 N2O 감축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전체 CDM 사업 감축량의 85%를, 중국은 CDM 감축량의 44.6%, 인도는 감축량의 24.9%를 차지했다. 이들 세 나라는 HFC와 N2O 프로젝트 감축량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HFC는 예상 배출량을 부풀린 다음 줄이는 것으로 계산한다는 논란 때문에 2007년부터 CDM 사업에서 제외됐다.
재생에너지 CDM 중국이 67%
CDM 프로젝트의 대부분(1950개)은 수력·풍력 등 재생에너지 생산과 관련이 있는데, 수자원과 바람 자원에 대한 과대평가가 문제로 지적됐다. 일부에서는 에너지 수요와 전력망 인프라를 초과할 정도로 과도한 재생에너지 보급이 이뤄지기도 했다.
중국은 풍력·수력·태양열 발전을 기반으로 한 모든 CDM 배출량 감소에서 67.4%를 차지했다.
쓰레기 매립지 가스와 메탄 활용 프로젝트는 100개 이상이 진행됐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20배 이상 돼 이를 에너지로 사용하면 온실효과가 줄어드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멕시코의 CDM 프로젝트 72개 중 51개가 매립 가스·메탄 활용이었는데, 51개 프로젝트 성공률은 50%를 밑돌았고, 이에 따라 멕시코는 국가 전체 CDM 감축 목표의 67%를 달성하는 데 그쳤다.
배출권 가격 하락에 시장 축소
많은 CDM 프로젝트가 진행됐지만, CER 가격이 하락하면서 국가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초기에는 CER 가격 기대치와 시장 가격이 어느 정도 같이 움직였다.
이 시기에는 특히 중국·인도·한국·브라질 등 '빅4'가 시장을 장악했다. 이들은 특히 2012년 이전에 CER 가격이 높을 때 사업을 벌여 혜택을 많이 받았다.
2012년 무렵부터 CDM 사업의 CER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CDM 사업 CER의 최대 구매자는 유럽연합(EU)의 배출권거래제(ETS) 시장이었는데, EU-ETS의 3단계(2013~2020년)에서는 최빈국의 CDM 사업만 활용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EU는 한발 더 나아가 2020년 이후에는 CDM 사업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유럽 기업들이 떠나면서 CDM 시장의 축소는 불가피해졌다. 투자가 줄고 감축 성과도 줄었다. CER 가격도 하락하면서, 최근에 CER을 발행한 국가들로서는 불리한 상황이 됐다. 다만 부탄·캄보디아·라오스 등 아시아 최빈국은 19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
소득 높은 개도국이 큰 혜택
결과적으로 CDM 시장은 당초 예상에 못 미쳤다. 예를 들어, 2009년 10월 세계은행은 2012년까지 CDM을 통해 개도국이 135억 유로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연구팀은 22.2% 적은 105억 유로에 그친 것으로 추정했다.
CER의 약 53.5%는 2012년 이전에 발행됐는데, '빅4'는 2012년까지 CDM 사업 수익의 90.5%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선진국이 투자한 돈이 남반구(개도국)로 흘러가도록 하자는 게 CDM의 근본 취지와는 다르게 고소득 개도국과 저소득 개도국 사이에 불균등하게 분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리 기후협정에선 까다로워져
한편, 2015년 채택된 파리 기후 협약에도 각국의 국가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해 해외에서 감축하는 내용, 즉 '국제 탄소 시장 운영 규칙(제6.4조)'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세부 이행규칙에 합의했고, 지난 6월 독일 본에서 열렸던 제56차 기후변화협약 부속기구회의에서도 기술적인 사항이 논의됐다.
CDM에서는 CER 이전 등을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맡겼으나, 파리협약에서는 협약 사무국에서 감시하게 된다.
연구팀은 "파리 기후협약에서도 교토의정서라는 틀과 기존 CDM 스타일을 반복한다면 비슷한 패턴의 편익 분배 불균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 빈곤한 남반구 국가들에 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감축사업 새로운 접근 필요
이 문제는 한국 정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파리 기후 협정에 따른 국가 감축 목표와 관련해 정부는 2030년 기준으로 3350만 톤의 온실가스를 해외에서 감축하기로 했다.
고려대 국제학부 정서용 교수는 "파리 기후협정 하에서 해외 감축 방법은 다양하고, CDM은 여러 방법의 하나일 뿐"이라며 "해외에서 온실가스 감축해서 우리 성과로 가져오려면 기존 CDM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DM 사업은 기업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성과를 가져오면 되는 구조였지만, 파리협약에서는 양국 정부가 전체 온실가스 인벤토리 상에서 감축분을 주고받았음을 확인하는 절차(상응 조정)가 필요하다. 파리협약은 국가별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도국들은 단순 CDM 방식으로 배출권을 국외로 이전하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정 교수는 "정부 개발원조(ODA)를 활용해 산림 분야 등에서 해외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진행하고, 거기서 나온 배출권을 별도로 기업이나 공적 자금으로 구매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20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