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한 한국'은 언제 만들 것인가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국민들은 나라가 쪼그라드는 게 걱정돼서 정권 교체에 힘을 실어주었다. 반칙과 불공정, 오만이 판치는 세상이 불안했고, 외교가 북한을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게 한심하고, 나랏빚만 늘려가면서 '나눠먹기'에만 여념이 없으니 미래가 안 보이고, 투쟁과 강경일변도의 노조가 힘없는 노동자들까지 겁박하는 세상이 정상은 아니라고 여겨 '못 살겠다 갈아 보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여당은 내부 분탕질에 휘말려 있고, 야당은 대표 방탄 게임에 올인하고 있다. 민생과 미래 먹거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리 지키기가 먼저다. 3류 정치도 못 되는 게 우리의 민낯이다. 위기감을 상실한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

 

10여 년 전부터 주변 강국들은 긴장감을 가지고 강한 나라 만들기에 나섰다. 중국의 시진핑은 중화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자는 '중국몽'을 내세우며 힘을 키우고 있다. 일본은 아베 이래 '강한 일본 되살리기'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바이든은 '다시 더 나은 나라 만들기'를 외치며 미국 중심 질서 지키기에 골몰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도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꾼다. 북한의 김정은마저 '강성대국' 만들기에 혈안이다. 한국만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이 없다. 우리는 좋은 시절로 돌아가자고 복고적 민족주의를 내세울 처지도 못 된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국민들은 짜증부터 난다. 한때 일본 산업계의 '6중고'라던 높은 환율, 높은 법인세와 사회보험료 부담, 유연성을 결여한 노동시장, 불합리한 규제 천국과 환경규제, 전력 공급 부족과 높은 에너지 가격, 거대 자유무역협정 가입 지체 등은 이제 고스란히 한국의 몫이 되었다. 이를 어떻게 넘어설지에 대한 고민으로 날을 새워야 할 정부와 국회가 '그들만의 리그'에 여념이 없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기업들도 강성노조의 투쟁과 임금 인상 요구에 지쳐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해외에서 생산하고 해외에 수출하니 자산은 쌓이지만 국내에 환원되는 부가이익은 줄었다. 게다가 경쟁 국가들과의 기술 격차는 날로 좁혀지고 있다. 대부분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1~1.5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정설이다. 우리의 주력 상품인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시장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 안보를 외치는 미국의 기업인 애플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YMTC, 대만의 TSMC와 손을 잡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저출산 고령화의 속도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빠르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81명인 현실은 향후 학령 인구 및 노동력의 감축은 물론 소비 감축으로 인한 총수요의 저하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체념하고 있기엔 이르다.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 덕택에 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추고 국제경쟁력이 강한 20·30대 인재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들은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디지털, IT 활용에 능하다. 전 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국처럼 경제, 행정, 사회생활 모두에서 디지털화가 진전된 나라는 없다. 디지털 인프라를 바탕으로 신산업 동력을 선도할 여력이 크다. 중후장대의 장치산업을 넘어선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우뚝 설 수 있다.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모드다. 정확성, 속도, 유연한 적응력을 동시에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안보의 시대는 불확실성을 안겨주지만, 역으로 보면 맘에 맞는 국가들,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기술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위기의식과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먹거리 시장을 열어가면서 자랑스럽고 강한 나라 만들기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매일경제, 2022-09-14]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2/09/808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