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
남북 상호간 적대행위 전면 중지를 골자로 하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작년 9ㆍ19 평양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됐다. 당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사실상의 남북간 불가침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한쪽에선 “1년간 군사적 긴장이 한 차례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반면 정부가 대북정찰능력 약화,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을 감수하며 합의를 이행하는데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로 정작 우리 군의 안보능력만 훼손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지상과 해상, 공중 모두에서 적대행위 중단 구역을 설정했다. 구체적으로 △군사분계선(MDL) 중심 10~40km 비행금지구역 설정 △동ㆍ서해상에서 남북으로 80~135km 해역을 완충지역으로 설정(함포 사격중지) △비무장지대(DMZ) 내 남북 감시초소(GP) 시범철수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에 합의했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DMZ 내 GP 11곳이 각각 폐쇄됐고, JSA 남북 군인들의 몸에선 ‘무기’가 사라졌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18일 “지상의 경우 북한은 과거 MDL 5km 이내 구역에서 포병 사격 및 야외 기동훈련을 지속 실시해왔으나 합의 이후 중단했으며, 동ㆍ서해 완충구역 또한 마찬가지”라며 “합의 이후 접경지역에서 적대행위나 위반사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이날 통일연구원 주최로 열린 9ㆍ19 공동선언 학술회의에서 “군사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 추진을 어렵게 하는 우발적 충돌 사태를 원천적으로 막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적대행위 전면 중지’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우리 군의 안보능력만 크게 훼손시켰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북한은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2월)이 결렬된 이후 군사 합의의 취지에 어긋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5월 4일을 시작으로 이달 10일까지 10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 신형 방사포, 신형 전술 지대지 탄도미사일 등 남한 타격용 ‘신형 단거리 발사체 3종 세트’를 사실상 완성한 것으로 평가됐다. 게다가 남북간 군사현안이나 군비축소 문제를 상시 논의할 핵심 기구인 군사공동위원회 가동도 진척이 없는 상태다.
한 군사 전문가는 “우리 군은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들여오고, 북한은 재래식 미사일 전력 강화에 나서는 등 남북 모두 합의의 취지와 반대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 군사력이 집중된 수도권이나, 최근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기지 위치 모두 군사 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에 속해 우리 군의 정찰기로 탐지조차 할 수 없다”며 “이번 합의는 남북간 전력의 불균형만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재래식 병력의 약 70%를 비무장지대 부근에 배치하고 있는데, 비행금지 구역 확대로 정찰 감시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접경지역 적대행위 중단 등 합의의 기본 틀은 지켜지고 있다”면서도 “합의 당시 군사훈련, 서해평화협력지대 등 남북간 안보 핵심 이슈는 ‘군사공동위에서 얘기하자’고 유보 조항으로 남겨놓았는데, 이 핵심 기구가 가동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한계”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북핵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남북 관계가 굴러가지 않는 측면이 있어 북미간 대화에 진전이 있어야 군사 합의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달 하순께 성사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실무협상과 관련 “북한은 영변 (폐기)부터 시작해보자는 것이지만, 미국은 핵 활동을 중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비핵화 범위를 두고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이를 좁힐 수 있을지는 결국 상응조치 수준에 달려있지 않겠냐”고 했다.
[한국일보, 20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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