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10억엔 한국이? 日 정부 책임 증거 우리가 무시한 것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박철희 "정부, 위안부 10억엔 처리 ‘일본 정부 책임’ 의미 희석"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 논란, 한·일 전문가에게 듣는다



"위안부 사죄 만큼 재발 방지도 중요
‘日 비난’ 아닌 ‘아픔 기억’ 사업 필요”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12일 정부가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기반으로 일본이 거출한 10억엔을 한국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한 데 대해 “지난 정부의 잘못된 협상임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다 합의의 좋은 부분까지 버리는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한·일 관계 전문가인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을 전제로 일본 정부 예산만으로 10억엔을 낸 것은 사실상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며 이처럼 말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 돈으로 환치함으로써 이런 의미가 희석됐다”면서다.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태스크포스(TF) 결과에 따라 지난 9일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이 화해·치유 재단에 낸 10억엔 중 아직 지급되지 않은 6억엔은 재단 계좌에 그대로 두고, 별도로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을 마련해 일본과 용처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낸 10억엔을 한 푼도 쓰지 않은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위안부 합의 TF도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매몰돼 한일관계가 경색되는 오류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과거사 문제에는 절도 있게 대처하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북핵 문제에서 일본과 협력하는 외교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정부의 후속 조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결과적으로 재협상이나 파기의 형태를 취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10억엔을 우리 정부의 돈으로 환치한 것은 사실상 합의를 무시한 것이라는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면서 이미 지원금을 수령한 피해자 36명의 의견은 무시한 것이 됐다. 



- 특히 어떤 부분이 정부 후속 조치의 한계로 보나.



한일 위안부 합의 중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서의 사죄와 반성 ▶일본 정부 예산으로 취하는 구체적 후속 조치는 우리에게 좋은 부분이었다. TF 보고서도 일본 정부 예산만으로 10억엔을 낸 것은 사실상 법적 책임 인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를 우리 정부 예산으로 바꿔버렸으니, 일본 정부의 책임을 증명하는 조치로서 한 것을 무시한 셈이 됐다. 



- 정부는 일본과 추가 협의를 추진 중인데.



일본에 추가조치 요구를 하더라도 합의의 틀 안에서 하는 것이 좋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대로 일본에 진정성 있는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 정부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한다’는 내용이 합의에 있는데, 이런 정신과 취지에 따른 일본의 행동은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합의를 넘어서는 추가조치를 요구하면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인상을 국제적으로 줄 수 있고, 일본 내 우익 세력 등에게 빌미를 잡힐 수 있다.



- 10억엔은 어떻게 용처를 정해야 할까.



위안부 문제에서 사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재발 방지다. 위안부가 어떻게 동원됐고,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기록해 유산으로 남기는 기념관 건립 등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늘 상기하고 잊지 않겠다는 교육의 장이나 기억의 전당을 만들면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위안부 문제가 북핵 협력 등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데.



과거사 문제를 너무 중요한 이슈로 내세우면 우리가 투트랙(과거사와 경제·안보 협력 분리)을 하자고 해도 일본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북핵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 문제에서 일본과의 협력에 집중할 수 있는 외교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을 맞는 올해가 양국 관계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시간의 축’에 초점을 뒀다.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자는 취지다. 이를 지키면서 ‘공간의 축’ 개념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분야를 찾아 협력의 공간을 찾는 일 말이다.



[중앙일보, 2018-01-12]
http://news.joins.com/article/22282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