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적대에서 신뢰로’] 싱가포르서 발아된 동북아 신뢰구축 씨앗, 빠른 이행으로 싹 틔워야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양국, 첫 만남서 공동성명

상징적 종전 준하는 성과

합의 사항 완전·신속 이행 신뢰 쌓이며 상황 진전 땐 추가 회담서 구체적 합의

김 위원장 이행 부담 더 커

 

70년 가까운 전쟁상태에 있는 두 적대국 정상이 6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어색한 웃음과 악수에서 시작된 정상회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약 5시간 만에 양 정상은 공동성명에 합의하고 밝은 웃음과 악수로 헤어졌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내용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체적인 시간표와 목표의 명기, 그리고 초기 이행조치 등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얼마 전까지 전운이 감돌던 양국 정상의 첫 만남에서 쉽사리 나오기 힘든 성과물이다. 이미 적대국 정상이 서로 웃으며 악수를 하고 공동성명을 낸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종전이 선언된 것과 다름이 없다. 공동성명을 보면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1),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에 노력하면(2), 그 과정에서 신뢰가 구축되어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진다(3)는 논리구조다.

 

북한과 미국의 실무진은 구체적인 관련 이행조치와 시간표를 협상하면서 완전한 이행을 어떻게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많은 논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초 원했던 시간표 내에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것들도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막힌 실무진 협상을 최고지도자가 풀어낸 것이 바로 공동성명이라는 결과물인데, 그 성명문과 회담 전후 정상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정상들의 해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 안보와 핵을 교환하는 큰 틀(1+2항과 3항의 교환)에 합의하고 자세한 이행조치는 후속협상에서 계속 다루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한다. 신속한 이행으로 신뢰가 쌓이면 검증도 쉬워지고, 과정도 빨라질 것이다. 미진한 부분은 앞으로의 정상회담에서 보완하여 구체적인 문서합의를 보자.”

 

완전하고 신속한 이행이라는 문구를 못 박은 공동성명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아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으로 돌아가자마자 미사일 시험장 폐쇄를 포함하여 뭔가 중요한 신속 이행을 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도 비핵화 협상 기간 중에는 최소한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나 공격적인 군사훈련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는 초기 단계 신뢰 구축을 위하여 북한과 미국의 실무진이 합의를 신속 이행하고, 그게 쌓여서 신뢰 구축이 진전되면 보다 구체적인 합의문이 나오는 후속 정상회담이 여러 차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행 의지를 확신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북한은 약속을 안 지키면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믿음이 깨지면 약속을 모두 처음으로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이다. 군사훈련은 원래대로 재개하면 되고, 수교협상은 중단시키면 되며, 마지막 순간까지 제재는 풀지 않기로 이미 확약하였다. 북한은 약속을 되돌리면 국제사회의 압박과 고립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신속한 이행에 대한 부담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훨씬 크게 걸려 있다. 대신 신속하게 이행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약속 이행 의지와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게 된다.

 

30대 초반의 김정은 위원장은 앞으로 수십년간의 통치를 고립과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겨우 겨우 권력유지만 하며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싱가포르의 야경을 보면서 그의 그러한 구상은 더욱 굳어졌으리라 믿는다.

 

이제 당분간 동북아시아는 전방위 신뢰 구축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다. 우선 북한과 미국이 신뢰 구축 초기 조치들을 신속히 이행할 것이고 남북관계도 판문점선언에 대한 신속하고 완전한 이행이 뒤따를 것이다.

 

북한과 일본 간에도 관계 개선 조치 등이 논의될 것이며 중국도 평화협정 참여를 통하여 남한 및 미국과 새로운 신뢰 구축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순항할 경우에는 무역문제를 제외하고는 미·중관계나 미·러관계도 크게 악화시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조만간 어쩌면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대로 세상은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동북아시아 신뢰 구축에 큰 기여를 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넘어 아시아 신경제 및 안보지도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경향신문 2018-06-1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132250005&code=91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