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WTO 개혁하라 미국·EU·중국의 동상이몽

박노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불만은 한목소리, 속내는 제각각

선진국 첨단·디지털 규범 제정

개도국 사다리 걷어차기 반발

 

지난달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만난 뒤 “EU와 협력해 세계무역기구(WTO)를 개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달 16일 도널드 투스크 EU 상임의장과 공동성명을 통해 “WTO 개혁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무역전쟁 중인 미국과 중국, 그리고 갈등 중재에 나선 EU “WTO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는 동상이몽 이다.

박노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EU 또는 캐나다가 말하는 WTO 개선은 2011 11월 시작해 아직도 매듭짓지 못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을 진행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미국·EU·일본 등 선진국은 WTO를 통해 첨단 산업, 디지털 관련 통상 규범을 만들고 싶어 한다. 공산품은 값싼 노동력을 가진 개발도상국과 경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를 내걸고 정부 주도로 첨단 산업 육성에 나섰는데 관련 통상 규범은 부재한 상황이다.

반면 아직 기술력이 부족한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개도국 입장에서는 디지털 무역 관련 규범이 사다리 걷어차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 미국 주도로 디지털 무역 어젠다가 논의됐지만, 인도와 아프리카 국가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이 주장하는 WTO 개혁은 ‘WTO 정신 회복 이다. 브릭스 국가들은 지난달 27일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WTO 회원국이 WTO 원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WTO 원칙은 자유무역 확대와 차별 없는 다자주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 강화가 신흥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 입장에서는 WTO 의사결정제도도 개혁 대상이다. WTO는 총의(consensus)와 표결로 의사결정을 한다. 164개 회원국 가운데 어떤 회원국도 제안에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 총의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한 회원국만 반대해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미국·EU·일본·캐나다를 중심으로 다른 나라를 설득해서 WTO를 이끌어왔는데, 중국이 급부상한 뒤 설득 대상이던 중국·인도·브라질·이집트가 선진국에 반대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다고 말했다.

WTO 상소기구 위원 선임 역시 만장일치로 정해지는데, 미국의 반대로 7명 중 3명이 공석이다. 오는 9월 위원 한 명의 임기마저 끝나면 분쟁 해결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표현처럼 절름발이(hamstrung)”가 될 처지다. 박노형 교수는 총의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는 일도 총의에 따라 결정해야 하니 쉽지는 않겠지만,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8-08-02]

https://news.joins.com/article/22853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