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차라리 종전을 위한 선언이 낫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임박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인터뷰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곧 이뤄질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가 진전이 없다는 비판이 점증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위한 작품을 구상 중인 것 같다.

 

이달 말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에 이어 북한 9·9절 무렵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을 통한 북·중 정상회담, 9월 중순 남북 정상회담, 9월 말 유엔총회를 계기로 미·북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으며, ·· 3자 정상회담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자신을 겨냥한 로버트 뮬러 특검의 칼날을 무디게 할 방패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기실 4·27 남북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북한의 비핵화 해법은 디테일에 강한 관료들에게 의존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정상들 간의 협상을 통한 접근법이다. ·북 정상회담-·중 정상회담-·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레드 카펫의 향연 속에서 비핵화에 대한 낙관론이 부상했다. 그러다가 북한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직후 내놓은 7 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종전(終戰)선언을 들고나오면서 미·북 간에 난기류가 조성됐다. 이 담화는 종전선언은 조·미 수뇌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더 열의를 보였던 문제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종전선언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합의가 이룩된 것도 바로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조·미 관계와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 나가자고 했기 때문이라고 함으로써 종전선언이 새로운 방식임을 시사했다.

 

북한의 전략은 미국의 안보 주류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분리해 내는 것이다.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했으니 북한은 또 한 차례의 승리가 목전에 다가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 3자든 남··· 4자든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게 되면 한반도에 새로운 판이 펼쳐지게 된다. 일각에선 종전선언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법적인 절차가 아니라, 정치적 선언이므로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북한의 입장에선 큰 의미가 있다. 국제법보다 권력 정치가 우위에 있는 국제 관계의 현실에 비춰볼 때 전쟁을 끝낸 북한엔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조정해야 하고, 유엔사령부도 해체하며,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을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결국 꼬리(종전선언)가 몸통(비핵화)을 흔들게 된다.

 

이러한 안보 도전을 충분히 상쇄할 정도의 북한 비핵화 조치가 이뤄진다면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까지 체결해도 된다. 그러나 북한은 7 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일방적이고 강도(强盜)적인 비핵화 요구라고 구체적으로 거명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CVID), 신고, 검증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핵 프로그램 동결 정도를 들고나와 (과거와 현재 핵은 그대로 둔 채) 더 이상의 핵 개발과 핵 확산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6·25전쟁 종전선언을 끌어내려 할 것이다.

 

종전선언보다는 차라리 종전을 위한 선언이 낫다. 6·25전쟁의 법적·정치적·실질적 종전을 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로드맵을 남···중 정상이 유엔총회를 계기로 만나 합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국제사회에 선언하는 것이 모두에게 안전하고 현실적이다.

 

[문화일보, 2018-08-22]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822010739110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