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트럼프 약점과 부분적 비핵화 위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TV로 시청한 직후 마음 한구석엔 안도감보다 우려감이 밀려왔다. 그는 미국 경제 호황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미국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불법 이민 근절을 위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을 국가 위기로 규정하고 초당적 행동을 촉구하는 모습에서 초조감이 드러났다. 러시아 스캔들 조사 결과가 서서히 옥죄고 있고, 경기도 하강 국면으로 진입할 태세이며, 지지율도 40%를 밑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적 한 방이 없으면 올 하반기부터 시작되는 재선 캠페인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국제 환경도 만만찮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해 놓은 트럼프 대통령은 마냥 중국을 몰아붙일 수만은 없다. 미국도 출혈을 감수해야 하므로 조만간 미·중 무역 협상에서 잠정 타협을 시도해야 할 상황이다. 안보 분야 국정연설에서도 그는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중동에서 서서히 발을 빼고 사우디와 함께 이란을 봉쇄하는 데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김정은과 2차 정상회담을 갖는다. 국정연설에서 우리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위한 역사적 노력을 지속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상황이 계속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그는 한반도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할 것이다. 좋은 일이다. 우리가 언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을 받았었던가. 역사적인 기회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북핵 문제의 스몰딜이 아닌 빅딜로 나타날 수 있는 기회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연장 선상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맞바꾸는 형태가 아니라, 북한이 가진 핵 능력을 국제 기준에 따라 신고하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적절한 보상을 통해 비핵화에 이르는 로드맵에 합의하고 6·25전쟁을 끝낼 기회다. 북한 비핵화가 첫발을 떼기도 전에 6·25전쟁이 끝났다고 성급하게 선언하는 종전선언보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와 함께 6·25전쟁을 제대로 끝낼 수 있는 제반 절차와 행동이 포함된 종전을 위한 선언에 합의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미국은 1차 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실무협상을 통해 타협 가능성이 보일 때 정상회담 날짜를 잡는 게 아니라, 날짜를 잡아놓고 북한과 실무협상을 벌이고 있다. 외교적 성공이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약점을 드러낸 채 북한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차 정상회담 때 (북한 전역의 모든 핵 폐기 절차가 아닌)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미국이 경제 제재 완화나 종전선언이라는 선물을 준다면 북핵 문제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다. 남북 경협이 시작되고 전쟁이 끝났는데 북한이 뭐가 아쉬워 핵 능력 리스트를 신고하겠는가. 후속 협상은 별 의미가 없다.



2018년 초에 시작된 북한 평화 공세의 전략적 의도는 미국이 감내할 정도의 부분적 비핵화를 통해 경제 제재를 해제시키고 김정은 정권에 대한 위협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게 주한미군이고 한·미 동맹이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북한의 조건부 비핵화를 수용할 수 없다.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리 정부는 미국과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북한에도 헛된 기대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시점 우리 정부에 주어진 역사적 책무다.



[문화일보, 2019-02-08]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208010739110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