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비건 “北 협상 복귀할 문 열려있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9일 오후 북한이 쏜 발사체에 대해 미 국방부가 '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한 가운데 10일 서울 사직로8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워킹그룹회의가 열렸다. 회의 내용은 비공개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도발이 재개된 비상한 상황에서 한·미는 대응전략 마련에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번 한·미 워킹그룹 회의는 교착상태에 접어든 북·미 대화를 재개하고 이를 통해 비핵화 진전의 단초를 만들기 위한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주요 안건이었다. 하지만 지난 4일과 9일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 도발을 감행하면서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미국 북핵수석대표인 스븐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예방을 시작으로 한·미 워킹그룹회의를 했지만 결과 발표는 없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이후 회의내용 발표는 물론 기존에 예정됐던 '도어 스태핑', 모두발언 공개까지 모두 비공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 장관 예방과 회의를 위해 외교부로 들어가는 비건 대표에게 외교부 출입기자들이 북한의 도발 의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굿 모닝"이라는 대답만 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미가 어떤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대북 식량지원 문제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화급한 현안인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이에 대한 한·미의 대응방향, 한·미 공조의 필요성 인식 등이 더욱 비중 있게 다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도발이 한·미 워킹그룹회의를 불과 하루 앞둔 절묘한 시점에, 대북 식량지원이라는 의제가 사실상 알려진 상황 속에서 현실화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북한이 받을 가능성이 낮은 식량지원 문제를 두고 한·미가 많은 시간을 뺏겼을 가능성은 낮다.

한·미는 일단 신중한 대응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개되는 부분까지 모두 비공개로 바뀐 것은 현재 상황이 그만큼 긴박하고 비상하다는 방증이다.

예정됐던 비건 대표의 청와대 방문도 북·미 대화의 마중물을 만들기 위한 방편을 논의하기보다 북한의 도발 이후 바뀔 수 있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분석과 상황평가,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한·미 공조의 강화, 북한을 대화판으로 유인할 방책 등 의제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3시께 비건 대표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과 만나 1시간20분 동안 면담했고, 지난 7일 한·미 정상 통화 이후 후속조치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미의 공조 방안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워킹그룹회의에 앞서 비건 대표는 강 장관에게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문은 열려 있다"며 도발을 했지만 대화로 비핵화 문제를 풀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제한적 수준에서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워킹그룹회의 등 한·미 간 논의에서는 우리 정부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대북 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미국도 대화기조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파이낸셜 뉴스, 2019-5-10]
http://www.fnnews.com/news/20190510175857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