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중 ‘30년 전쟁’ 시작과 무개념 외교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고 했던가. 나라 안팎으로 걱정거리가 한두 개가 아니다. 경기침체, 정치 실종, 사회적 대립 격화 등은 물론 대외적으로 북한 비핵화 외교가 겉도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우리의 고민을 배가시키고 있다. 미·중 갈등은 무역을 넘어 패권 경쟁의 단계로 이미 진입했고, 한국 외교사에 있어 가장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지난 4∼5일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화웨이와 관련, 미국의 압박에 협력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한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8일 “향후 수십 년간 한·미 경제와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5G 인프라에 대한 조달 결정에서 화웨이와 같이 외국 정부의 불법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강요를 받게 될 위험이 있는 통신 장비 공급자들의 위험성을 엄격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6년 ‘사드(THAAD) 사태’가 중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들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면, 이른바 ‘화웨이 사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미·중이 만들어낸 태풍의 눈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현 상황은 우리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으면서 범정부적 차원에서 ‘조용히’ 우리 글로벌 기업들과 머리를 맞대고 종합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보틱스, 전기차, 자율주행차, 5G 인터넷, 고성능 마이크로칩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판도는 향후 30년 정도가 지나야 미·중 간에 승부가 결판나는 장기적 대결이다. 따라서 미·중 간에 ‘30년 전쟁’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그 전쟁 속에서 우리의 미래 먹거리·북핵·인구 문제 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신속히 찾아내야 한다. 이는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각계 최고 전문가들의 경험과 통찰력을 빌려 ‘집단지성’을 창출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4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남북관계가 풀리면 1970년대 ‘중동 특수’에 버금가는 ‘북한 특수’가 일어나 미·중 간 틈새 외교에서 탈피하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 새로운 도약의 순간이 온다고 보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전략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사항인 우선순위 정립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대북 정책에 (핵심국과의) 양자외교가 종속돼 미·중 경쟁 속에 우리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외교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남북관계가 개선된다고 미·중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도, 한·일 관계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북핵 외교와 4강 외교를 우리 외교를 이끄는 마차의 양쪽 수레바퀴로 간주하고 힘을 분산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오전 북유럽 3국 순방을 떠나기에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정부에서 긴급하게 생각하는 추경안이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출국하려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전화로 말했다. 추경 자체가 경기침체의 완충 기능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정부 추산으로도 0.1%에 그친다. 미·중 갈등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이 “나라 안팎으로 만만치 않은 도전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북유럽 순방을 연기했으면 좋겠으나, 국가 간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으니 마음이 좋지 않다”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쪼록 정부가 문제의 핵심에 신속히 접근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2019-06-11]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6110107311100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