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막후채널 풀가동…결국엔 文·아베 `톱다운`으로 풀어야“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김경민 한양대 교수,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외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매일경제가 5일 전직 고위 외교당국자들과 한일 관계 전문가들에게 갈등 고조를 막고 양국 관계를 복원할 현실적 해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의 반전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직접 만나 통 크게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한일 간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해 빠르게 `초기 진화`에 나서고, 막후 채널은 물론 의회·원로그룹 등 가용 가능한 소통·중재 경로를 총동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교통상부 2차관을 역임한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무엇보다 양국 간 외교 수장이 나서 긴장의 불길이 퍼지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우방국 간 무역갈등이 정치적 측면과 맞물려 돌아갈 때는 외교장관 간 핫라인을 가동하는 것이 SOP(표준업무매뉴얼)"라고 말했다. 그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간 전화 통화는 물론 서울과 도쿄 간 셔틀외교를 복원해 (갈등의) 에스컬레이션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원장은 "강 장관이 고노 외무상에게 직접 전화해 (쟁점과 관련해) 양측 간 어떤 오해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자고 제의하는 등 대화와 협력을 위한 용의를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초기 조치 이후에는 결국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 물줄기를 대결에서 대화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 정보기관 등 막후 채널과 의원그룹이 나서 대화 테이블을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는 "한일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상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야 한다"면서 "정상회담을 하려면 대화를 위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그룹이 의회"라는 견해를 펼쳤다. 김 교수는 "과거와 달리 현재로선 한일 간 의원외교가 거의 가동되지 않는 상태"라며 "이참에 양국 간 의원외교 채널을 복원하는 정치·외교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역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 해법은 정상회담일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양 교수는 "지금은 이미 부처(외교당국)에서 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청와대가 나서라`는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면서 "우리가 먼저 (대화를) 제안하고 협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해서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에 대해 일본이 수용할 여지가 있는 타협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현재 한일 갈등의 핵심은 분명히 강제징용 판결 문제인 만큼 이것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 해법은 무엇이든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신 고문은 "이미 일본은 한일 기업 기금 조성 방안을 거부해 한국 정부가 포함된 3자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된 일본 기업에 끝까지 배상 책임을 추궁할지 말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소장은 "정부가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끝까지 묻는다면 경제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면서 "일본 기업에 대한 압류 조치 중단에 대한 정치·외교적 결단이 향후 양국 관계 전개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일 갈등은) 국제법이나 외교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라며 "강대강으로 보복을 주고받는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비대칭적인 데다 우리 쪽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한편 한일 갈등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겪을 경제적 파장을 주변국에 적극 설명하고 여론을 환기해 일본 측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또 합리적 성향의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를 강화해 여론 악화를 막고 관계 개선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이 소장은 "한국이 국제 여론을 환기해 일본에 압박을 가하고 일본 내 자유 세력이 (자국 정부 측 조치를) 반대하는 데 연대하는 등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미국 등 주변국들이 이른 시기에 건설적 중재에 나설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다소 의견이 갈렸다.

양 교수는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동맹관계가 악화되면 큰일"이라며 "미국은 이미 두 번 정도 (한일에) 경고를 보냈고 이르면 이달, 늦어도 다음달에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일 갈등에) 개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신 고문은 "한일 관계에 대해 일정한 목소리를 냈던 미국의 개입적 경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사라진 것으로 본다"면서 "미국이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이 사안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매일경제,2019-7-5]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19/07/492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