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美 “실망” “강한 우려”…한ㆍ미동맹서 이례적 표현 나왔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미국통으로 분류됐던 한 전직 외교관은 23일 “한ㆍ미 동맹에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던 표현들이, 그것도 공개적으로 나온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이 “강한 우려” “실망” 등의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을 듣고서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대미 업무를 했지만, 미국이 이 정도로 거칠고 수위 높은 표현을 공식 입장에서 쓴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의 희망대로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결과가 안 나왔기 때문에 실망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고 말했지만, 공식 입장 표명 이면에 깔린 미국의 불쾌감과 우려는 단순한 실망 수준을 넘어선다는 관측이 외교가에선 나온다. 지소미아가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서 갖는 함의 때문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한ㆍ미ㆍ일 협력을 대중 견제의 핵심 기제로 생각해왔고, 역내 동맹국 간 직접 정보 공유를 통해 견제 라인을 튼튼하게 유지한다고 생각해왔다. 이에 지소미아 종료가 중국을 노리는 칼끝이 무뎌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입장 표명, 표현도 방식도 이례적

이번에 미국의 입장 표명이 표현과 방식 면에서 이례적인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 한국이 중국에 경도됐다는 우려가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제기됐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미 국무부는 “참석 결정을 존중한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당시 업무에 관여한 소식통은 “우려의 소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정하기 전에 미국 쪽과 사전 협의를 굉장히 많이 했고, 지지는 못해도 ‘이해한다’ 정도 입장까진 받아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22일 “미국이 우리 결정을 이해했다”고 한 데 대해 미 정부 소식통은 한국 매체를 통해 “실제 결정에 대해 불만을 표명하는 것과 별도로 우리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양해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에 특히 불만스럽다”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충분한 사전 교감이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정부의 소식통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관계자의 ‘미국이 양해했다’는 발언에 대한 불만은 공통된 인식”이라고 답변했다.

지소미아 종료 비판, 미·일은 유사

반면 지소미아 종료를 비판하는 미ㆍ일의 표현은 매우 흡사했다. 미 국무부 성명은 “이번 결정은 문재인 정부가 동북아에서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안보 도전들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고,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22일 담화에서 “한국의 결정은 지역의 안보 환경에 대한 완전한 오판”이라고 말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ㆍ일 간에는 이미 이와 관련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고, 그 결과 메시지가 조율돼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한ㆍ미ㆍ일 협력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보려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국무부가 성명에서 ‘한국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라는 표현을 세 차례나 반복해 썼는데 이것도 흔치 않은 표현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은 우리와 달리 대통령의 이름을 따 행정부를 지칭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워싱턴에 문재인 정부의 성향에 대해 답답해하는 기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사롭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전략적 오판을 하고 있는 주체가 문재인 정부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일보, 201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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