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신화의 한반도평화워치] 위기 맞은 대통령, ‘최고 선수’로 외교안보 진용 꾸려야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반도 지정학과 지도자의 선택

사방에서 몰아치는 모래바람 때문에 앞뒤 분간이 힘들다. 한반도 지각 변동 속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뿐더러 그 다음은 누가 뒤통수를 후려칠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역사적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고, 남·북·미 정상 간 깜짝 판문점 회동과 같은 정치 이벤트가 관련국 지도자들의 국내 지지율에는 보탬이 됐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지속적 ‘희망 고문’도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북·미 간 입장 변화의 징후나 구체적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한·일 관계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일본의 보복성 무역 제재 국면으로 이어졌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만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의 양자 회담은 상호 입장 차이만 확인하였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한국 배제 강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의 중재 역할도 미미하다. 더욱이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WTO 개도국 혜택 박탈’ 불똥이 한국에까지 튀어 국내 농업 분야에 타격이 우려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한 목적도 한·일 관계 개선이나 비핵화 문제 논의가 아니라 50억 달러(약 6조원)로 차기 한국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는 것이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는 올 타결액의 5배를 넘는 액수다. 더욱이 한국 정계에서는 한·일 군사정보호협정(GSOMIA) 파기가 일본에 대한 대응 카드로 거론되면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에 균열이 생길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각각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과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한·일 갈등과 한·미·일 안보 공조 이완의 틈새를 파고들어 중·러 연대와 동북아에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계산된 도발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도 일본은 러시아와 한국 모두에 대해 ‘다케시마’ 영공 침범을 규탄했다.

북한의 한·미 갈라치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은 잇따라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이를 한·미 합동훈련과 한국의 미국 스텔스 전투기 반입에 대한 엄중 경고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남측만 비난하며 미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전혀 언짢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미국에 대한 경고가 아닌 점만을 강조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관자적 반응은 북한의 한·미 갈라치기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북한의 미사일 경고가 동맹국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것일지라도 미국에 위협만 아니면 괜찮다는 트럼프식 외교·안보 셈법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북한 도발로 한국이 위협받으면 유엔 결의 없이 개입한다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토대로 한 한·미동맹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우려스럽다. 북한이 남측에 대한 무모한 군사 도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의 군사적 보복으로 인해 김정은 정권이 몰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핵실험만 아니면 괜찮다’는 식의 ‘트럼프 면죄부’를 김정은은 어떻게 활용하려 들까? 그는 엿새 만에 단거리 탄도미사일(북한은 ‘방사포’라 주장)을 또 발사하였다.

최근 한국의 상황은 100여 년 전 풍전등화의 조선 말기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개방 압력으로 발발한 신미양요(1871년)를 신호탄으로 일본에 의한 운요호사건(1875년)과 조·일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1876년), 대원군과 민비 세력의 다툼에 청이 개입했던 임오군란(1882년), 급진 개화파가 군사 지원을 약속한 일본의 미온적 대처로 청군에 진압당한 갑신정변(1884년), 일본에 의한 국모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이 러시아제국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1896~97년),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가쓰라-태프트 협약’이 빚은 을사늑약(1905년), 그리고 한·일합방(1910년) 으로 이어졌다.

철저히 자국 중심의 계산법으로 우리를 좌지우지하던 동북아 열강들의 세력 쟁탈전은 한 세기가 훌쩍 넘어선 오늘날에도 그 구조적 현실이 대동소이하다. 미·중·러·일이라는 4강 플레이어들도 그대로다. 여기에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눈 북한이란 플레이어가 추가되어 ‘5중고’를 겪게 된 형국만 달라진 것이라면 달라진 것이라 할까?

유독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는 김정은은 한국이 외세(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민족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무역 규제 조치 명분으로 북한으로의 밀반출 의혹 등을 내세우며 민족(한국) 때리기를 하는데, 왜 일본을 향해 반발하지 않는가? 오히려 한·일 갈등과 미·중·러 대립에 편승하여 북·미 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해 나가기 위해 한국을 대상으로 군사적 움직임을 보인 것은 아닌가?

5중고 겪는 대한민국

더욱 우려되는 것은 사면초가의 외교·안보 상황에 부닥친 대한민국의 모습이 구한말 조선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는 점이다. 여야 막론하고 정치인들 사이 팽배한 극단적 편가르기와 흑백논리는 현장에서뿐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악성 유언비어와 여론몰이로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을 내 편 네 편으로 쫙 쪼개버렸다.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시민사회·학계도 진영 논리에 매몰되기는 매한가지다. 외부 도전에 맞서야 하는 외교·안보에서도 우리끼리 한 편으로 뭉치지는 못할망정, 북한 겁박에 대해서는 민족 대 외세로 의견이 양분되고, 대일 접근을 두고는 토착 왜구, 친일파, 반일 극단주의자 등 상대 진영에 대한 무차별한 험담과 낙인찍기에 급급한 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적폐 청산과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다. 한동안 ‘기승전북한’이라는 말이 있었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노력이 남·북 관계 개선에 올인하여 대북 유화책을 펴면서 4강 외교를 소홀하게 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북한이 계속하여 우리 뒤통수만 치는 행동을 일삼는데도 우리의 최고지도자는 여전히 인내와 선의에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연속되는 미사일 도발에도 강력한 대응은커녕 탐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긴급 NSC 대책회의도 주재하지 않았다. 중·러 침범과 평양발 경고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를 언급하며 대일 정면 돌파 의지를 보인 것과 너무나 대조되는 태도다.

그뿐 아니라 최측근 청와대 수석이 ‘애국이냐 이적이냐’라는 프레임으로 페이스북 정치를 통해 인기몰이 감정게임에 도취해 있었는데도, 대통령은 그를 징계하기는커녕 또 다른 중책에 기용할 생각이 큰 것 같다. 대북 문제, 한·미동맹, 한·일 관계, 탈원전, 경제 파탄 등 현 정부 들어 핵심 국정 현안들이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피해 의식과 방어적 배타주의로 똘똘 뭉친 소수 측근만이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왈츠가 주창한 구조현실주의가 강조하듯, 무정부 상태 국제관계를 권력 투쟁의 장으로 볼 때 지정학적 현실은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구조적 요인 못지않게 지도자의 역량과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바둑에서 판세가 불리해도 게임을 하는 것은 주어진 패로 최대한 유리한 전략을 짜고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이념을 초월하여 최고의 정치지도자로 인정받는 에이브러햄 링컨(남북전쟁)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대공항) 미국 대통령,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및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이들은 모두 국내 분열 상황이나 국제 분쟁,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위기 속에서 포용과 통합 능력을 발휘한 위대한 정치 커뮤니케이터들이었다.

지도자는 지정학 숙명 극복해야

과거를 교훈 삼아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상황 판단과 공존을 위한 자제와 타협, 그리고 유연하면서도 신중한 선택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조적 현실과 지도자의 선택 간 상호작용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호에 경고음이 울렸다. 물론 한·미 동맹의 불균형 문제를 완화하고 한·일 관계에서 역사 문제를 바로잡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그 노력이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일 관계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돼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이 굳건해야 북한의 도발 위협이 줄어든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도 나홀로 다가서는 한국보다는 한·미·일 안보협력체를 배후에 둔 한국과의 유대가 훨씬 더 전략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최고의 선수’로 외교안보 진용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

[중앙일보, 2019-8-2]
https://news.joins.com/article/2354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