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2 독립이 아니라 제2 건국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이 정도면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고 할 만하다.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해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이 퍼펙트 스톰이라면, 지금 한국이 당면한 외교·안보 도전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심지어 미국까지 우리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작년 초부터 시작된 우리 정부의 북한 비핵화 외교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충만`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수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싱가포르-하노이로 이어지는 미·북정상회담을 `중재`하며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마음을 `간파`한 이후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그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후 한국에 들러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돌발적인 `그림`을 연출하면서 자신의 재선 전략에 이를 활용했을 뿐이다. 북핵 문제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안 일본 정부는 `소외감`을 느꼈다. 한미 양국의 성급한 접근에 대한 불만을 비공식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따라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설치한 화해치유재단을 문재인정부가 집권 초 일방적으로 해산한 것에 격양돼 있던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관련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해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끝까지 버티다 강제노역 혜택을 본 일본 기업에다가 우리 기업까지 더불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1+1`안을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끝났다고 보는) 일본 정부는 이를 즉각 거부했다. 위안부 합의에 이어 강제징용에 관한 조치를 보면서 더 이상 한국과 협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7월 1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정치 문제를 경제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정경분리원칙, 즉 민주주의 국가들끼리의 불문율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가 흔들리자 7월 23일 중국과 러시아는 동해에서 사전 통보도 없이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 안으로 들어와 `공동훈련`을 했고, 러시아 비행기는 독도 상공까지 들어와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모욕적` 사건이었다.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점검하고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급기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겠다고 하자 우리 정부는 (그전까지 관심도 없던) 한·미·일 안보협력을 일본이 위협한다고 워싱턴으로 달려가 `중재`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떨떠름해했다. 마침내 8월 2일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퍼펙트 스톰이 한반도를 휘감고 있는 현시점에서 일본을 상대로 `제2의 독립운동`을 외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대응일까? 무엇이 우리를 퍼펙트 스톰의 한가운데로 몰아간 것인지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북정책과 주변 4강 외교의 불균형이 초래한 재앙인 것이다. 대북정책도 `허공에 발차기`하고 있는 것 아닌지 점검할 때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중단거리 미사일인데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시험 발사하고 있는 단거리 발사체는 중국과 러시아 공격용인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우리는 제대로 억지 및 방어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미국이야 태평양 너머에 있는 나라니 그렇다 쳐도 한국과 일본은 머리를 맞대고 북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제2의 독립운동이 아니라 `제2의 건국`을 한다고 생각하고 대북정책·외교·경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수정해야 할 시점이다.

[문화일보, 2019-8-5]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08/597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