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前 외무부 장관
주미대사로 내정된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마련한 강연회에서다. ‘격변하는 동북아 지정학 속의 한·미 동맹과 그 진로’ 주제의 강연에서 한 전 장관은 ‘지소미아 폐기’ 문제를 다뤘다. 정치권에서 이 의원의 아그레망(부임 동의)이 미뤄지는 이유가 지소미아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터다.
주미 대사도 지낸 한 전 장관은 “이 의원이 주미대사의 역할을 성공적이고 생산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움을 드리는 자리라 고민 끝에 지소미아 중단 결정에 관한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 전 장관은 지소미아 폐기가 한·미 동맹에 지장을 준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소미아 중단은 중국, 북한에는 환영할 만한 일이나 미국엔 상당히 부정적 메시지를 주는 결정”이라며 “미국이 볼 때 일본은 ‘굿 보이’(good boy), 한국은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 이미지를 부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소미아를 미국을 개입시키고 일본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쓰겠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미국에는 우리 정부가 중국·북한에 편향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신호)을 주고 일본에는 우리에게 보복 조치를 취할 명분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한 전 장관은 이수혁 의원을 향해 “일본에 보복하는 과정에서 한·미 관계를 악화시켰다. 대미외교가 그만큼 험난해질 것이 우려된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을 조언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신 무엇을 얻어내겠다고 결정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내년이 오기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문제를 해결했다, 북한으로부터 큰 양보를 받아 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길을 만들 것”이라며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 제한이나 핵무기 개발·생산·실험을 안 하는 조건으로 대북제재 완화 등을 선택할 수 있다고 봤다. 한 전 장관은 “이 경우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아니고 반쪽 협상이라 볼 수 있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 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며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고 북한도 생각할 수 있으므로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 전 장관은 “한국은 사실상 동맹체제로 볼 때는 (미·중 가운데 미국인) 해양국가 편으로 볼 수 있는데 완전히 어느 편인지 결정 못 하고 눈치 보는 형태”라며 “특히 진보 정부에선 ‘어떤 형태가 더 이익을 볼까’라는 입장을 취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일본과 비교적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며 “일본 입장이 우리처럼 모호한 점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질의응답 시간에는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일본이 한국을 우방으로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발생했다. 지금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요인이 북한보다 일본이라고 보는 국민이 많다”고 주장하자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한 시민은 “누가 그렇게 보느냐”고 소리치는 일도 벌어졌다.
[중앙일보, 2019-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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