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트럼프의 못 믿을 ‘동맹관’… 韓·美 혈맹도 시험대 오르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 박원곤 한동대 교수

미국의 ‘시리아 철군’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동맹관(觀)’을 두고 국내에서도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터키는 미군의 철군 직후 힘의 공백을 이용하며,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장악 지역을 공격했다. 미군을 도와서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함께 나섰던 쿠르드족은 미국을 향해 배신감과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다. 동맹을 가볍게 버리는 트럼프 대통령발 ‘토사구팽’에 국제사회의 시선도 날카롭다. 전통적인 우방 및 혈맹의 가치가 아닌 비용이나 효용적 가치를 우선시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재확인되면서 한·미 동맹을 둘러싼 우리의 여러 현안에도 불안 요인이 있다고 감지되고 있다. 미국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이나 연합군사훈련 폐지 등의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측불가’ 트럼프, 전화 한통에 시리아 철군 결정

시리아와 쿠르드족을 대하는 미국의 입장은 불과 몇 년 만에 극단적으로 변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시리아 북동부에 지상군 2000여명을 파병했다. 이들은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족 민병대인 시리아민주군(SDF)의 훈련과 장비 등을 지원했다. 이후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IS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는 명분을 내세워 시리아 철군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은 “강력한 동맹 없이는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다”며 반발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동맹 역시 무시당했다. 쿠르드족은 물론 함께 시리아 작전을 펼쳐온 영국·프랑스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과 논의 없이 철군 방침을 내비친 것이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일 터키가 시리아 북동부를 향한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했고, 사흘 뒤인 지난 9일 터키는 공격을 개시했다. 당시 백악관은 불개입 의사를 설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통화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 4월 8일 경기 연천군 전곡지역 훈련장 일대에서 열린 한·미 연합 도하훈련에서 주한미군 험비를 비롯한 전투차량들이 부교(浮橋)를 건너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의 속내는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족은 우리와 함께 싸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돈과 장비를 지급받았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터키와 싸우고 있다”며 “나는 거의 3년 동안 이 싸움을 막았지만, 이제 말도 안 되는 끝없는 전쟁에서 벗어나 우리 군인들을 집으로 데려올 때”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시리아 철군은 트럼프의 대선공약이기는 했지만, 에르도안과 전화를 한 뒤에 곧바로 결정한 것을 볼 때 즉흥적이고 전략적 고려 없는 결정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라며 “사활적인 이해가 달려 있지 않은 지역에 대해 더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부분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짚었다.

◆동맹 정책에도 ‘트럼프 리스크’ 커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미국이) 터키의 이번 시리아 공격을 허용해 앞으로 필요한 경우 동맹을 발전시키는 것이 더 어려워지게 됐다고 보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며 “동맹은 매우 쉽다(Alliances are very easy)”고 말했다.

쿠르드 사태를 비롯한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인식을 고려할 때 한·미 동맹도 비슷한 운명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 결정 이후 미국이 한국에 대한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하는 등 한·미 동맹의 고리가 느슨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또 탄핵 공세 속에 재선 레이스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비핵화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최근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되는 등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어서 돌발 상황의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국내 전문가들도 이런 우려를 전하고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아직 다수는 아니지만 미국 주류 군사전문가나 군 인사 중 ‘과연 한반도에 지상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소수 의견을 내는 사람의 숫자가 늘고 있다”며 “‘주일미군도 있고, 태평양사령부도 있는데 해·공군 정도 주둔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려서 저도 당황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한반도의 문제가 쿠르드족의 문제와 100% 같지는 않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등치관계로 놓고 협상을 벌이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등으로 대응할 위험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한·미 훈련 변경 방안이 거론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박원곤 교수는 “주한미군 철수·감축은 아니더라도 북·미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을 제시할 가능성은 있고,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 위협 대비에서 동북아 안정 등으로 변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북·미 협상의 카드로 사용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주한미군 감축 카드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원한다 하더라도 이는 미국 조야에서 상당히 파장이 있을 문제고 (트럼프 자신에 대한) 공격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며 “트럼프가 예상 밖의 엉뚱한 행동을 할 가능성은 늘 남아있지만 미국은 트럼프 혼자 움직이는 사회는 아니기 때문에 (주한미군 감축이) 쉽게 될 문제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다만 한·미 동맹 관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박원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 정부가 트럼프에게만 올인하고 있는 점은 위험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미국의 정통 관료, 의회, 외교전문가 상당수가 한국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서도 ‘지소미아 얘기 없었다’고 끝낼 게 아니라, 미국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면서도 한국 편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늘려놓는 것이 현재로서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2019-10-13]
http://www.segye.com/newsView/20191013507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