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전문가 "한·일 관계 개선 물꼬 튼 건 성과...정상회담 테이블 못 올린 건 한계"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4일 "한·일 관계 악화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의견을 모은 데 대해 전문가들은 악화일로를 걷던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총리와 아베 총리가 양국 갈등 해소를 위한 대화를 재개하기로 한만큼 향후 상황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사법부가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을 추진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 이후 문재인 정부의 숙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한 점에선 한계도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총리와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 총리관저에서 만나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담은 양측이 당초 합의한 '10여분'보다 길어지면서 오전 11시 12분부터 11시 33분까지 21분 동안 진행됐다. 이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아베 총리에게 '양국 현안을 조기 해결하도록 노력하자'는 내용이 담긴 문 대통령 친서도 전달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에 따르면 두 총리는 양국은 중요한 이웃 국가로서 한·일 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 총리는 또 한·일 경색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외교 당국간 대화를 포함한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촉진하자고 했다. 이와 함께 어려운 상황일수록 양국 간 청소년 교류를 포함한 민간 교류가 중요하다고 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 총리에게 "양국은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 국가"라며 "북한 문제에서 일·한, 일·한·미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한국이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준수함으로써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려 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일본이 그런 것처럼 한국도 1965년 한·일 기본관계 조약과 청구권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해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며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10분만 예정됐던 회담을 21분동안 했다는 것은 아베 총리가 성의를 보여줬다는 것"이라면서 "외교적 대화를 이어가자고 한 것은 대화로 해결을 모색해보자는 의미로 적어도 외교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더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협상을 해보자는 정도의 분위기는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관계 개선을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며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날 수 있는 디딤돌을 놨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7월 이후 양국의 어려운 시기가 3개월 반 동안 이어졌다"면서 "이번에 총리 회담이 이뤄진 것은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까지 비공식적,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시도됐던 대화들이 정부 간 채널을 통해 공식적이고 활발하게 이뤄져 나갈 것"이라면서 "(회담 전)이 총리가 양국 대화를 촉진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는데, 그런 목표치에는 도달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이날 회담에선 일본이 수출 규제를 철회하고,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는 등의 구체적인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었던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오늘 특별히 정상회담을 하자고 구체적으로 제안을 한 것은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정상회담에 부정적이라거나, 가능성을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정상회담에 항상 열려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이 총리와 아베 총리가 양국 정상회담을 회담에서 거론할 정도로 양국 간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리 측이 정상회담에 열린 자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일본이 일단 정상회담에는 선을 그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번 회담을 통해 물꼬를 트긴 했지만 실제 협상에 들어갔을 때 지뢰밭을 피해가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당장 우리 사법부의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 문제가 있다. 정부가 사법부에 집행 연기나 유예 등을 요청하는 등 실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지가 숙제"라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지소미아 폐기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에서 종료까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지소미아 종료 전까지 한·일 양국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회담은 더이상 관계가 악화되지 않게 봉합한 수준"이라면서 "결국은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나 양국 간 신뢰를 회복하고 갈등을 정리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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