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파워인터뷰] “韓·日갈등, 그 자체도 문제지만… 韓·美동맹 약화의 결정적 원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前 외교안보수석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2010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 마지막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하지만 천 이사장은 진보 정권인 노무현 정부에서 2006년 4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라는 요직도 맡았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후속 합의인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를 이끌어 낸 주역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인지 천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진영 논리는 상당히 강했지만 정책 결정은 국익 차원에서 중심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좌파 진영 논리가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2015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언급하면서 “중국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본 게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결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나.

“문재인 정부가 과거 다른 정부보다 진영 논리, 즉 진보 좌파 논리가 정책 결정에 훨씬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지난해 판문점 선언이나 9·19 남북 군사합의 등은 진영 논리가 작동하지 않고서는 우리 국익 차원에선 절대 나올 수 없다.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는 진영 논리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어떤 게 국익에 가장 부합되느냐, 어떤 정책이 대한민국을 더 안전하게 하고 국제적 발언권을 높여 우리 입지를 강화하느냐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에서도 진영 논리가 작용했나.

“노무현 정부에서 진영 논리에 대한 주장이 많이 나왔지만,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요 외교·안보정책을 결정할 땐 국익에 대해 아주 많이 고민했다. 심지어 진영에서 주장하는 논리를 거부하면서까지 국익 차원에서 고민해서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했는데, 북핵 문제와 대북정책에서 내 소신과 크게 배치되는 결정을 한 게 별로 없다. 노 전 대통령이 굉장히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내게 협상 전권을 주다시피 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로 나갔을 때 나만큼 광범위한 재량을 갖고 나온 수석대표는 없었다.”

―보수 정권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정부도 진영 논리를 따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실수는 중국 눈치를 너무 많이 봤다는 것이다. 중국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올라 열병식을 지켜본 것은 박 전 대통령의 큰 잘못이다. 또 위안부 문제 때문에 한·일 관계도 너무 오랫동안 경색시켰다. 이게 결국 한·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미국 워싱턴 조야에서는 동맹으로서 한국의 정체성, 동맹에 대한 한국의 기여(commitment) 등에 대해 여러 의구심이 있었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경색된 한·일 관계를 우려하면서 “반일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반미이며, 지금 한·미 동맹 약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한·일 관계”라고 단언했다. 한·일 관계 악화 이후 미국에서 한국의 대외정책과 동맹으로서 기여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졌기 때문으로, 천 이사장은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나 한·일 관계 때문에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천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굴욕적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가불(假拂)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천 이사장은 “핵 능력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는 ‘상수’라면, 비핵화 의도는 언제든 가장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변수’”라면서 “국가안보 책임자들이 의도 중심으로 접근하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또 천 이사장은 미·북 비핵화 협상이 장기간 ‘샅바 싸움’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면서 북한도 협상 판을 깨는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에는 신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열렸다.

―2013년 문화일보와의 파워인터뷰에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했다’고 자평했는데, 현재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안보 및 이익을 제일 중시한다면 판문점 선언이나 남북 군사합의서는 절대 나올 수 없다. 지난해 판문점 선언에서 평양 정상회담, 남북 군사합의서까지 모두 대한민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지금 당장은 남북 화해 분위기 때문에 영향이 없지만 장기적으론 대한민국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독소 조항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충분한 검토 없이 성급하게 북한이 수십 년 동안 추구하던 목표를 달성하도록 그냥 우리가 말려들어 갔다.”

―어떤 조항이 문제인가.

“판문점 선언 2조 1항에 보면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의 근원이 되는 모든 적대행위를 모두 중단한다’고 돼 있다. ‘적대행위’ 개념을 역사상 이렇게 확대한 건 없다. ‘적대행위’는 군사충돌, 전쟁 등 보통 총 쏘고 피 흘리는 게 적대행위인데, 긴장을 조성하는 모든 행위를 적대행위로 규정하는 건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것이다. 북한의 목적은 무엇인가. 육·해·공에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대표적인 게 한·미 연합군사훈련으로, 이를 막는 장치를 넣은 것이다. 북한이 뭘 노리고 합의하자 했는지 알면서도 서명했다면 대한민국 국익을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군사합의서에서 가장 큰 독소 조항은, 남북 간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사실상 신뢰를 파기할 수 있는 행위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군사적 신뢰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활동의 투명성이다. 상대가 군사적으로 뭘 하는지 서로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상호 군사활동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군사적 신뢰 구축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데, 남북 군사합의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놨다. 비행금지구역을 만들어 군사분계선(MDL) 인근을 정찰하지 못하게 한 것은 북한이 기습공격을 준비해도 우리가 보지 못하게 합의해준 것 아닌가. 군사적 신뢰 구축의 ABC를 아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북한은 MDL 남쪽 20㎞, 남한은 북쪽 20㎞까지 정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전에 군사훈련이나 부대 이동 등을 상호 통보해야만 군사적 투명성이 확보되는데, 오히려 투명성을 말살하는 합의를 했다. 이 같은 치욕적 합의를 하는데도 합의서에 ‘내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 군인들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 그게 대한민국의 가장 큰 불행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키워드는 ‘평화’인데.

“‘평화’는 굉장히 매력적인 단어지만, 동시에 국민을 오도하기 가장 쉬운 말이다. 평화는 조건을 누가 결정하느냐에 따라 평화의 품질이 달라진다. 평화도 명예로운 평화가 있고, 굴욕적인 평화가 있고, 지속 가능한 평화가 있다. 내일의 평화를 희생해 오늘 누리는, 이른바 ‘가불한 평화’도 있다. 내일 전쟁 위험성을 더 높이는 평화라면 명예롭고 가치 있는 평화라고 할 수 없다. 평화 지상주의는 패배주의와 통하는 길인데, 평화 지상주의적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평화에 대한 환상을 일으킨다. 평화와 평화의 환상을 국민은 잘 구분하지 못한다. 지금 평화라는 것은 북한의 평화 파괴 능력을 키워주면서 우리가 누리는 평화인데, 이게 옳은 평화인가. 북한이 평화의 조건을 결정하는 그런 평화라고 한다면 우리는 평화의 조건을 결정할 힘이 없고, 평화의 조건을 결정할 권리를 북한에 넘긴다고 한다면 그 평화는 북한의 자비에 의존하는 평화다. 북한 자비에 의존하는 평화는 북한이 자비를 거둬들이는 순간 언제든 깨질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선의를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평화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논의할 때 북한의 능력을 중심적으로 볼 것인가, 의도를 중심적으로 볼 것인가 하는 2가지 방식이 있는데, 국가안보 책임자들이 의도 중심적으로 접근하면 아주 위험하다. 의도는 언제든지 가장할 수 있고,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더 위험한 것은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의도만 보고 안보정책을 세웠다간 어느 순간 완전히 당할 수 있다.”

―실제로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안보정책에서 지켜야 할 철칙은 능력 중심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평화 파괴 능력이 늘어나고 있나 줄어들고 있나, 이를 가지고 안보정책을 결정하는 ‘능력 중심적인 프로세스(capability based process)’가 중요하다.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도 않고, 만들어진 능력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게 상수라면, 의도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변수다.”

―북한이 최근 ‘이스칸데르’급 단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도 하는 등 무력은 커지고 있는데.

“북한의 한반도 평화 파괴 능력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능력을 남측에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북한과 계속 잘 지내면 평화가 온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건 위태로운 평화이며 굴욕적인 평화다. 이런 평화에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안위를 맡긴다는 건 무책임한 안보정책이라고 본다. 북한의 능력과 관련해선 SLBM 못지않게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단거리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위험하다. 고체연료이기 때문에 사전 탐지가 상당히 어렵다. 이런 미사일을 여러 군데 배치하면 우리가 북한을 선제공격해도 다 제거할 수가 없다. 또 꼭 대남용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게, SLBM을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주일 미군기지까지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일본에 대한 하나의 전략무기로 봐야 한다.”

―반면 북한은 남측과의 교류·협력에는 일절 반응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의 진짜 의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대한민국이 북한 생존 게임에서 중요한 변수가 아닌 것이다. 북한을 미국과 연결해주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은 끝났다. 북한은 남측이 촉진자든, 중재자든 제대로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40∼5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는 점에서 권력을 유지하려면 핵만 가지고는 안 된다. 경제 발전의 꿈을 이뤄야 한다. 취임하자마자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 졸라매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했고, 이게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인기를 상당히 끌어올린 약속이었다. 최고 목표는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건데, 김 위원장은 공화국(북한)을 제대로 번듯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진짜 꾸고 있는 것 같다. 꿈을 이루려면 핵만 붙들고선 안 된다는 것을 김 위원장도 알고 있고,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양보를 북한이 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를 했을 것이다. 다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하고 싶으며, 자기들이 할 양보는 가급적 나중에 늦게 내놓고 미국으로부터의 보상은 선불로 받고 싶기 때문에 아직도 샅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김 위원장이 충분히 이 같은 실존적 문제의 본질을 알고 있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도발까지 감행할까.

“ICBM 발사와 핵실험은 미국의 무력 사용을 정당화시켜주는 리스크(위험)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으로선 해야 할 실험을 다 끝내서 협상장으로 나온 것인데 북한의 핵·ICBM 시험 중지를 자기 공이라고 떠벌리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정치적 인질로 잡혀 있는데, 인질로 잡혀 있을 땐 이게 미국에 대한 압박 수단이자 대미 협상용 레버리지(지렛대)다. 하지만 핵·미사일 실험을 하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을 인질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는 셈이어서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군사적 행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면 협상에서 미국이 유리해질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오판하지 않는다면 협박만 할 뿐 실제로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ICBM 발사 등을 한다면 2017년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옵션을 고려할까.

“옵션이 아니라 실제 무력공격도 할 수 있다. 그 상황이 되면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행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인데, 미국 내에서도 무력 사용을 반대할 수가 없다. 현재 미국에서는 외교적 노력을 다 해보고, 안 되면 최후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북한과 정상회담을 3번이나 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이 약속을 깬다면 무력 사용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없어진다. 2020년 말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 엉터리 딜(합의)을 하느니 온 국민 앞에서 북한에 무력 사용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호재가 없다. 이렇게 되면 군사적으로 북한 핵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협상 조건이 달라질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선제공격을 해도 반격을 못하는데, 김 위원장이 (반격을) 참으면 정권은 살아남을 것이다. (미국에) 대들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곧바로 정권이 끝장난다. 김 위원장도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러면 달라지는 것은 갑을 관계다. 그 상황에서는 미국이 비핵화 조건을 결정하게 된다. 협상의 ‘힘의 균형(밸런스 오브 파워)’이 완전히 뒤바뀐다.”

―지난 5일 미·북 실무회담에서 미국이 석탄과 섬유 수출 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북한에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제재의 핵심 부분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북한의 석유 수입에 쿼터가 정해져 있는데, 북한의 수입 제한을 늘려주거나 풀어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북한이 보유한 외화를 쓰게 하는 게 좋다. 북한 경제에 필요한 석유 등을 한국 기업으로부터 밀수하게 하지 말고 쿼터를 늘려서 합법적으로 사게 해주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 명분도 된다. 반면 북한이 뭘 팔아서 돈을 벌게 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북한이 돈벌이한 뒤 이걸 어디에 쓸지 알 수 없지 않나.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쓸지, 핵·미사일을 지키는 데다 쓸지 이건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북 비핵화 협상은 어떻게 전망하나.

“미·북의 스톡홀름 실무회담은 서로 그냥 떠본 것이고. 북한은 가기 전에 결과를 정해놓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도 무한정 기다릴 순 없다. 이 상황대로 연말까지 가면 러시아·중국에 파견된 ‘외화벌이’ 일꾼들이 돌아와야 한다. 미·북 간에 샅바 싸움이 끝나면 그때부턴 협상하지 싶다. 내년 초에 미국 입장이 요지부동이란 것을 북한이 확인해야 제대로 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은 미국이 얼마나 융통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탐색전이다. 이게 끝나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하면 내년 상반기 중에는 열려야 하지 않겠는가. 내년 하반기가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유세하느라 바빠서 정상회담 날짜 잡기가 더 힘들어진다. 기세 싸움이 끝나고 나면 실무회담이 재개돼 합의문 작성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3차 미·북 정상회담은 1·2차 당시의 ‘톱다운’이 아니라 ‘보텀업’이 될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그게 안 돼 또다시 헛걸음하게 되면 정상회담 프로세스가 완전히 죽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안 할 수 있다. 북핵 문제가 대선에 도움이 되고 비핵화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자랑할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잠시 TV 스포트라이트만 받았을 뿐 사기당했다 소리를 들으면 선거에 오히려 도움이 안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오는 11월 말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계기로 가능할까.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얼마 안 남았는데, 김 위원장이 아무리 눈치가 없더라도 남의 잔치에 들러리로 오겠나. 김 위원장이 온다고 하면 자기가 제대로 영웅 대접을 받고 민족 전체 지도자로서 위상을 높이고, 남남 갈등을 일으키는 데 이게 도움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자꾸 김 위원장 방문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가 잘 안 간다.”

―남북은 남북문제를 따로 풀어야 하는가.

“따로 풀어야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제한돼 있다. 김 위원장은 남한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서라도 북한을 위해 경제협력·교류를 할 줄 알았는데, 남측이 독자적 결정을 못하는 데 대해 영양가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천 이사장은 복잡한 한반도 정세를 풀기 위한 대안으로 보수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자체 핵 개발에 대해선 여전히 ‘신중론’을 유지했다. 대신 천 이사장은 한·일 관계 개선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특히 200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며 정부가 대신 배상해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다른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했던 문 대통령의 ‘자기 부정’”이라고 일갈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한국 전환 이후 주한미군 감축·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일 한반도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사령부가 더 이상 존속할 명분이 없고, 미군의 한국 주둔 명분도 약화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와 관계 없이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 때문에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 방위비 분담 문제가 순탄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비핵화 협상에는 전혀 써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주한미군 감축·철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주한미군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큰 역할을 한다고 보지 않는 미국 사람이 다수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지금 중국 편인지, 미국 편인지도 구분이 안 되고 한·일 관계도 엉망이기 때문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한국이 기여한 바가 없는데 왜 우리가 3만 명의 병력을 주둔해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미군 주둔을 지지해왔던 군부·국방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그래서 북핵 협상용 카드로 쓰기도 전에 방위비 협상이라든지 한·일, 한·중 관계 때문에 주한미군이 철수할까 걱정이다. 인계철선(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보다는 미국의 방위공약 신뢰성을 담보하는 측면에서 주한미군이 있고 없고는 천양지차다.”

―한·미 동맹 약화에 따른 대안으로 자체 핵 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데.

“핵무장론에 대해선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차원에서 잘 짚어봐야 한다. 다른 경제적 손실이나 우리가 감당할 수준인지 등을 다 짚어보고 결정해야 할 일이지, 홧김에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라늄 농축 기술도 없고 관련 연구·개발(R&D)도 해둔 게 없다. 지금 가동하는 원자력발전소 25개도 문을 닫아야 하는데, 이에 따른 전력 30% 손실을 보충할 다른 수단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장기적 검토는 해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절박성과 유용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일 관계 회복도 상당히 필요한 것 아닌가.

“한·일 관계 차원에서만 봐선 안 된다. 이게 한·미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한·일 관계가 나쁘면 나쁜 만큼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이익을 지키는 데 지장을 주기 때문에, 반일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곧 반미다. 지금 한·미 동맹 약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현재로선 한·일 관계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방일했는데,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문재인 정부가 지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와 싸우는 것은 사실 과거의 노무현 정부와 싸우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당시 이해찬 총리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민·관 합동위원회를 열어 ‘강제징용 개인청구권은 일본이 준 3억 달러 무상원조에 다 포함돼 있기 때문에 소멸됐다’는 입장을 냈다. 한·일이 싸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문재인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와 화해하고, 노무현 정부 당시 문재인 수석과 화해해야 한·일 간 갈등이 없어진다.”

■ 文정부의 對日정책

“문재인 정부가 지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와 싸우는 것은 사실 과거의 노무현 정부와 싸우는 것이다.”

[문화일보, 2019-10-23]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02301031630116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