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가 생존 위협하는 세 가지 환상

-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역사학자 E.H. 카는 명저 『20년의 위기』에서 민족주의 발흥과 이상주의 만연이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이상주의에 매몰돼 있으면 국가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무엇보다 북한이 원하는 걸 해주면 평화가 찾아온다고 인식한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대의 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적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려는 방법론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평화가 온다는 근거 없는 이상주의에 기울어있다.

첫째,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나 남북한 협력 사업을 해주면 남북 평화가 찾아올까? 북한은 제재와 동전의 양면인 비핵화 및 미사일 개발 중지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비핵화가 없는 제재 완화는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제재를 완화하면 비핵화를 저지할 수단이 줄어든다. 제재 우회를 통한 남북한 협력 사업 전개는 김정은이 원하는 핵·경제 병진 노선의 달성을 우리가 도와주는 격이 된다. ‘강한 북한’을 만들어 주는 게 한국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둘째, 한·미 연합훈련 축소나 연기는 북한이 원하는 결과를 손도 안 대고 코 풀게 해주는 격이다. 유사시 준비 태세가 갖춰지지 않은 군대는 한국을 방어하는 방패가 될 수 없고, 이는 북한만 이롭게 하는 일이다. 북한이 계속 핵·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을 강화한다면, 싱가포르 합의에 연연하지 말고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하는 것이 옳다.

셋째,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도 북한에 유리한 조치다. 정전체제 변경은 유엔사령부를, 평화협정 체결은 연합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지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북한과의 평화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한국 방위를 위한 동맹만을 약화하는 것은 문제다. 북한의 대칭적 군사 신뢰 구축 조치나 북·중 동맹의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우리가 나서서 서두를 일은 아니다.

문 정부는 또 중국에 유화적 태도를 취하면 한반도가 안정된다고 보는 듯하다. 그래서 중국에 유화적이거나 저자세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이 얻은 실익은 거의 없다.

첫째, 침묵과 저자세는 오히려 ‘한국 무시’를 가져온다. 정상회담에 간 대통령이 혼밥을 해도, 기자단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자리 배치 등 의전에 변화가 와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시진핑 주석이 한국전쟁 참가를 ‘미제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하는 데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 표명조차 없었다. 할 말을 하고 이견을 제시하지 않으면 격에 맞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둘째, 중국이 사드 배치를 두고 한국에 보복 조치를 내놓자 ‘3불 정책’이라는 유화 조치로 물러섰지만, 중국은 보복 조치를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은 사드 배치, 미사일 방어, 한·미·일 안보협력 등 안보 주권 사항이자 동맹 현안에 관해 실익 없는 양보만 한 꼴이 되었다.

셋째, 중국에 잘 보여도 중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우선할 뿐 한국 편을 들지 않는다. 중국은 한·미 동맹을 약화하려는 북한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고, 한국에 대해서도 한·미 동맹 갈라치기를 압박하고 있다. 북·중 관계는 강해지는 데 한·미 동맹이 흔들리면 우리만 손해다.

넷째, 반중 전선에 가담하지 않고 애매하게 서 있다고 한국이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 한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존중 등 자유주의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대중 봉쇄정책에 적극적으로 편승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이 중국에 경도된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주면 결국 한·미 관계에서 갈등의 골만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문 정부는 일본은 멀리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 정부는 일본에 얼굴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최근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본 역할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있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첫째, 일본이 가해자인데 자기반성도 부족하니 끝까지 밀어붙여 승부를 보려고 한다. ‘지지 않을 터’이니 타협할 이유도 없다는 기세다. 하지만 일본 내에 사과 피로증과 화해에 대한 체념으로 혐한과 반한이 팽배해있다는 현실을 보지 못했다. 일본 내 친한파가 무력화된 현실에도 눈을 감았다. 신뢰가 바닥에 닿아 있어 돌이킬 길이 없는 데, 협력이라는 기회의 창을 닫았다가 우리가 필요할 때 열어달라는 격이다. 일본을 지나치게 멀리해서 스스로 불러들인 손해였다.

둘째, 일본쯤은 견뎌낼 수 있다는 과잉된 자신감도 문제다. 한·일 기업은 글로벌 공급 네트워크에 공동으로 참여하면서 상호의존하는 관계이고, 군사안보 면에서도 일본과 주일미군의 도움은 한국 안보에 불가결한 요소다. 양국이 협력하면 서로 이득이지만, 일방이 손해를 본다면 비대칭적으로 우리 측 손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그로 인한 손해는 결국 기업과 국민 몫일 수밖에 없다.

셋째, 한·일 관계와 한·미 관계는 별개라는 것도 환상에 가깝다. 한·일 양국은 미국 동맹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있다. 한·일 안보 협력은 미국의 중요한 전략적 이해다.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과 쿼드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지만, 한국은 참가를 망설인다. 동맹의 비대칭성이 커지고 있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결국은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중앙일보,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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