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사이드칼럼] 중거리핵전력 조약 폐기와 동아시아

신각수 前 주일대사 

핵 군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미국 측 폐기로 8월 2일 종료되었다. 사거리 500~5500㎞인 중거리핵전력은 발사 후 탐지 시간이 짧아 위기 상황에서는 오판으로 인해 전면 핵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1970년대 말 소련이 SS-20 미사일을 배치하고 백파이어 전략폭격기를 증강하자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응을 촉구했다. 1979년 NATO는 감축 교섭을 제안하는 한편 중거리 탄도·순항 미사일을 배치하는 소위 `이중 결정`을 내렸다.

나토는 퍼싱Ⅱ 미사일을 5개 회원국에 배치하였다. 이에 소련과 교섭이 시작되어 1987년 미국과 소련의 미사일 2692기를 모두 폐기한다는 INF가 채택되었다. 이 조약은 핵 군축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냉전 해체를 연 계기로 평가되었다. 이와 같이 중요한 핵 군축 조약이 왜 폐기되었을까. 직접적 원인은 러시아가 조약에서 금지된 지상발사 순항미사일 9M729 4개 포대를 배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분명한 조약 위반 행위로 조약을 폐기할 수 있지만, 지중해·유럽 기지에 배치한 해상·공중발사 중거리미사일로 대응 가능하다는 점에서 명분상 이유로 보인다.

실질적 이유는 중국의 압도적 중거리미사일 전력 증강에 대한 대응 필요성이다. 중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세력권을 구축하고 미국에 대한 군사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을 구사하면서 중거리미사일 전력을 대폭 확충하여 INF 대상 중거리미사일 약 1400~1800기를 보유함으로써 `공격력 격차`를 가져왔다. 또한 미국이 2018년 핵태세 보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강대국 경쟁에 초점을 두고 유연한 맞춤형 핵전략으로 변경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북한이 북·중 국경에 배치한 사거리 2000㎞인 북극성2 미사일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INF 폐기로 인해 핵 군축 조약으로는 2021년 2월 만료되는 신전략 무기 감축 조약만 남게 되었고, 미사일·핵 군비 경쟁의 위험이 커졌다. 그리고 미국 중거리미사일이 군사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인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에 배치되어야 하므로 중국과 갈등이 예상된다. 미국령인 괌, 하와이, 알래스카에 배치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이동성 표적을 타격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효용성도 제한된다. 또한 INF 체결로 극동지역에서 철수되었던 러시아 중거리미사일이 재도입될 우려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 방안은 미·러·중 3자 군축회담인데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사일 전력 대부분이 중거리미사일인 중국은 이미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단거리미사일 사거리 확장, 지상발사 순항미사일 전진 배치, 중거리미사일 전진 배치, 종말궤도조종 중거리미사일 배치 등 4개 선택지를 놓고 중거리미사일 개발·시험 발사를 시작하였으며 수년 내 실전 배치할 전망이다. 그러나 자국 배치와 관련해 아시아에서는 호주가 반대하고 일본도 부정적 반응이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영국도 반대하고 있다. 한편 미국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는 극동에서 러시아 측 대응 조치를 부를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국 중거리미사일의 국내 배치 여부가 당면 과제다.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관련국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태도를 정해야 한다. 배치가 불가피하다면 사드 전례에 비추어 중국 반발에 대한 대응책도 강구해야 한다. 차제에 주변국 미사일 전력에 대비한 방위력 증강을 위해 우리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한미 미사일협정 개정을 꾀해야 할 것이다. 각자도생 시대에 자체 억지력 확보는 우리 안보와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매일경제, 2019-10-17]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0/835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