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북협상 실패 대비한 플랜B 준비하자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올 2월 베트남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난 후 7개월여 만에 재개된 미·북 협상이 또 결렬됐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6일 개최된 미국과의 협상 결렬 직후 북한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미국은 유연한 접근과 창발적인 해결책을 시사하며 기대감에 부풀게 하였으나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며 결렬 책임을 미국 측에 전가했다. 미국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져갔다"고 함으로써 북한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결렬의 원인은 창의성 여부보다는 근본적인 입장 차이에 있다.

체제의 특성상 북한은 하노이에서 `최고 지도자 동지`가 견지했던 입장에서 후퇴할 수 없다. 하노이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어려움 때문에 북한이 어떤 요구를 해도 다 받을 것으로 보고 영변 핵시설 폐쇄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핵심 제재 5개의 해제를 요구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지 않고 역으로 `빅딜`을 요구해 판을 깼다. 그러나 현재 미국 내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는 등 하노이 때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가 더 나빠졌다. 북한은 내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의 `유일한` 외교적 치적인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조치 파기를 위협하면 결국 자신의 입장이 관철될 것으로 믿는다.

미국 셈법은 다르다. 하노이에서 북한 전술에 넘어가지 않고 `노딜`로 끝낸 것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까지 칭찬할 정도였으니, 미국 역시 하노이에서 견지한 입장에서 후퇴할 수 없다. 2020년 선거 유세가 한창일 때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하면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거세겠지만 대선 승부를 가를 정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북한의 기존 협상안을 수용해 그럴듯하게 `포장`할 경우 후폭풍이 더욱 클 것이다. 비핵화 근처에도 못 가보고 북한에 대한 핵심 제재를 풀어준 한심한 행정부로 역사에 낙인찍힐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포괄적` 해법이다.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에 합의하면 미국은 대북 핵심 5개 제재 해제를 약속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능적` 해법이다. 영변 핵시설 폐쇄에 대해 미·북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 선언, 상당한 규모의 인도적·경제적 지원을 북한에 제공하는 방안이다. 북한이 영변 폐쇄에다 핵 개발을 동결한다면 핵심 5개 제재 중 1~2개 정도는 유예할 수 있다. 이것이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스톡홀름에 들고 간 창의적 아이디어의 일부일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협상 타결을 절실히 원하고 있으나 미·북 간 의견 차이가 워낙 커서 제대로 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 정부는 미·북이 영변 핵시설 폐쇄와 개성 및 금강산 재개를 맞바꾸는 정도만 돼도 남북관계에 새 전기를 만들고 내년 4월 총선에서 집권당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 방안을 받을 경우 북한이 아닌 남한을 위한 협상 타결이 되는 것이고, 미 대선 전에 핵심제재 해제를 미국에 요구하기 힘들어진다. 하노이에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진심을 간파한 트럼프가 재선이 되든 안 되든 대선 이후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 공조를 철저히 하면서 제대로 된 비핵화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비핵화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플랜B`를 마련하는 것이 상책이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전 외교부 차관

[매일경제, 201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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