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朝鮮칼럼 The Column] 우리가 물려줄 미래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말한 나라는 친일 적폐 세력을 청산하여 남북 공동체를 이루고 다소 못살더라도 더불어 평등하게 사는 나라, 그리고 자유보다 평등이 우선인 나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20~30년 뒤 우리 청년들이 우리나라의 주역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어떠한 나라가 되어 있을까?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70여 년간 성장하는 역동적 국가였다. 그러나 성장도 멈추고 인구는 줄어들고 국제적 위상도 떨어지고 민주주의는 위기다.

우선 세계 최고의 0%대 저출산율이 지속된다면, 2050년경 인구는 20%가 줄어들어 4000만명 초반대가 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매년 100만명 이상 태어났다면 금년 대학에 입학한 세대는 50만명대이고 현재 태어나는 세대는 20만명대로 진입했다. 당장 20년 후 대학생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대학 절반은 문을 닫아야 한다. 교육기관, 교육자, 사교육 시장 모두 기로에 서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을 보면 미래 모습이 보인다. 집값 상승을 막는다고 여기저기 짓고 있는 신도시는 어린이들이 사라지면서 고스트 타운이 될 운명이다. 정치적 이유에서 늘어가는 고속전철의 역사(驛舍)도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도 인구가 줄면서 상당수 폐쇄되어 갈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 마을도 도시도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다. 놀이동산도 리조트도 상당 부분 폐쇄되어 흉물이 되어 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인구의 질이다. 초고령 사회 진입은 시간문제다. 젊은이 한 사람이 노인 2명을 돌보아야 하는 구조다. 국가의 활력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구조다.

올해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 3%도 찾아먹지 못하고 1%대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요즘 경제 수치마다 통계치를 발표한 이래 최저·최장기라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졸업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초입에 진입하고 있다. 일본은 90년대 국민소득에서 미국을 앞선 1위 국가였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3만달러 소득으로 30위 정도다. 축적된 부도 별로 없는데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것이다. 성장이 멈추면 국가 위상 하락은 불가피하다. 세계 평가 기관들은 20년 뒤 한국 경제가 현재 11위에서 15위 정도로 하락할 것으로 평가한다. 그것도 한국의 잠재적 성장력을 발휘했을 때 상황이다. 현재 정책이라면 20위권 밖으로 추락할지 모른다. 우리 세대가 누리고 있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다음 세대는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문 정부가 아무리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려고 해도 성장이 없는데 좋은 분배가 이루어질 수 없다. 좋은 분배가 없으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높아진다. 성장과 분배는 조화를 이루며 같이 가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 주 52시간 근무, 기업 제재 등 더불어 잘살려는 시도가 하위층의 고용과 소득을 축소해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고 있는 역설적 상황은 '성장 없는 분배'가 갖는 위험성을 말해준다. 지난 20세기 100년에 걸친 사회주의 실험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이유이기도 하다. 양극화는 우리만이 아닌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국민은 양극화에 분노하여 국내 정권의 책임을 물어 교체를 단행한다. 정치가 극단적 포퓰리즘으로 치닫는 이유다. 진보 정권은 보수로, 보수 정권은 진보로 교체되었다. 진보 정권은 진보적 처방전을, 보수는 보수적 처방전을 내린다.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국내 처방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국제 협력과 우리 외교력이 절실한 사안이다.

한때 우리 청년들은 '이게 나라냐'며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20~30년 뒤 사회의 주역이 되었을 때 과거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때가 역사상 가장 잘살았고 자유로웠던 시기로 평가할까 두렵다. 한국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미래 성장 동력을 열심히 찾아왔다. 1960~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했고 1980년대 조선과 자동차라는 먹거리를 창출했다. 90년대 반도체, 통신을 키웠고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구축하여 IT 강국으로 등장했다. 우리 경제가 세계 10위권이지만 R&D는 미·중·일·독 다음의 세계 5위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였다. 현재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대비하는 모습도 찾을 수 없다. 막대한 국가 재정을 미래에 대한 대비 없이 오늘을 위해 쏟아붓는 일에만 관심 있어 보인다. 활력을 잃고 심장이 식은 대한민국을 후세에 물려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조선일보, 2019-11-2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5/20191125035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