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소미아 파기, 판단착오 따른 자해행위… 日뿐 아니라 美 뺨 때린 격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청와대와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맞서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함으로써 양국 갈등을 안보 협력 거부라는 단계로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지소미아 종료를 대일 협상 카드화하려는 전략은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미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일본을 압박해보려던 기대도 무산됐다. 지소미아 거부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 비대칭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걷어찬 전략적 오산이자 외교·안보적 자해행위다. 청와대는 최근 “지소미아 종료로 한·미 동맹이 더 옅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는 한·일 간 문제를 넘어 한·미·일 안보 협력의 문제이자 한·미 동맹의 문제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조치에 ‘실망’과 ‘우려’를 표명하고, 미 고위 당국자가 잇따라 방한해 지소미아 연기를 의제화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비밀 동맹 조약 아닌 일반적 정보교환 협정 

지소미아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면 이에 대한 정확한 실체적 이해가 필요하다. 즉 지소미아와 관련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먼저다. 첫째, 지소미아는 군사정보 교환에 관한 비밀 동맹조약이 아니라 협정 당사국끼리 주고받은 군사정보의 보호가 주된 내용이다. 이렇게 교환한 정보를 제3국이나 제3자에게 발설하거나 누설하지 않는다는 게 지소미아의 핵심이다. 정보의 보호, 접근, 전달, 보안, 보관, 파괴, 재생산, 번역 및 노출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둘째, 지소미아에 의한 정보 교환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지소미아를 체결했다고 해서 당사국이 의무적으로 군사기밀을 교환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 상대국과 상호주의에 기초해 필요시에만 선별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지소미아에 의해 교환하는 정보의 등급은 군사 2급 비밀 정도가 보통이며 극비사항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셋째, 지소미아는 일본과만 체결한 협정이 아니다. 일본을 포함해 35개 당사자와 체결한 일반적 정보교환 협정이다. 한국은 일본을 포함한 34개국과 나토 등 35개 당사자와 협정을 체결했다. 이 중에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그리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서방세계와 인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등 중동 국가와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같은 구 공산권 국가도 포함돼 있다. 북한과 오랫동안 우호 관계를 형성해온 나라들과도 협정을 체결했다는 것은 군사정보의 교환가치와 필요에 근거해 지소미아를 맺은 것이지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제3국과 대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넷째, 지소미아 체결의 주된 내용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정보에 관한 것이다. 북한 미사일의 발사 지점, 고도, 비행 방향, 낙하지점 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며, 이는 정보의 정확도와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는 전략적 오산 

일본과의 지소미아 연장 거부 판단은 한마디로 전략적 오산이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한 이유로 내세운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등 협정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였다. 하지만 수출관리 문제는 그 체제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논리와 명분, 자료를 갖고 있었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충분한 토론이나 숙의를 거치지 않고 한·미·일 안보 협력을 상징하는 지소미아 연장 거부를 들고나온 건 단견이었다. 

특히 지소미아 연장 거부 조치를 취하면 미국이 이를 염려해 일본에 압력을 가하고 수출 규제 철회를 종용할 것이라는 기대는 희망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정치 행위였을 뿐이다. 실제로 미국은 8월 22일 한국이 지소미아 연장 거부를 결정한 이후 일본에 압박을 가하기보다는 한국에 대한 압력을 증대시켰다. 지소미아 중단 결정이 일본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에 한국 측에 유효한 협상 카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으나 이 역시 환상에 불과했다. 지소미아는 북한 군사력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주된 부분이어서 일본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에 비대칭적으로 도움이 된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자해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지소미아 연장 카드를 일본의 수출 규제와 연계시켜 등가교환 아이템으로 맞바꾸어보겠다는 계산은 애당초 성립할 수 없었던 판단착오였다.

만약 지난 8월 22일 청와대와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조치를 발표했다면 일본이 많은 외교적 부담을 안고 한국에 외교적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자는 유화적 메시지를 낸 후 지소미아 연장을 천명했더라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얼마나 옹졸하고 보복적인 조치였는가를 부각하며 한국의 외교적 성숙도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미·일 한보협력, 한·미 동맹과 직결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연장 거부 조치를 통해 외교적 마찰 당사자인 일본은 물론 미국의 뺨을 때린 격이 됐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 협력의 상징이자 중요한 표상이다. 특히 미국의 세계 질서 운영 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포함한 새로운 미국 주도 아·태 질서 구축의 관건을 군사력 정보라고 여긴다. 북한 핵·미사일을 포함한 군사력 정보가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지소미아 연장 거부 조치는 미국의 세계 질서 운영 및 역내 안보 협력 구상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거듭 ‘실망’과 ‘우려’를 표명하고 복수의 채널을 통해 지소미아의 회복을 요구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미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방한해 지소미아 재검토를 ‘푸시’했고,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도 같은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14일 한국을 방문한다. 미국은 또 지소미아를 유지하는 게 한국 및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안전과 생명 보호에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미사일 공격의 우선적인 타깃이 수월(秀越)한 대북 군사 자산을 가진 미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소미아의 파기는 한·일 간의 문제인 동시에 한·미 동맹의 문제이다. 미사일은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미국을 경유한 정보 교환을 통해 대응한다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지소미아가 연장돼야 하는 이유들이다.

한·미·일 모두 북한의 군사 활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각각 수집된 3국 정보 자산이 합쳐지고 비교 통합될 때 정확한 실시간 대응과 함께 빈틈없는(seamless) 경계가 가능해진다. 한·미·일이 가진 미사일 대응체계를 상호 운용성을 살려가며 적절하게 조합할 수 있고 대응의 강도와 정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이 협정으로 기대되는 지점이다. 지소미아가 북한에는 위협이 될 수 있지만 한·미·일에는 포기할 수 없는 정보자산이다. 지소미아 복원은 미국과 일본에 앞서 한국의 안보를 위하는 길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북한에 유리한 상황을 한국이 스스로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문화일보, 2019-11-12]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11201030242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