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북협력 추진 '文정부 패착' 안되려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한국·미국·북한 사이에는 미묘한 삼각관계가 존재한다. 한국은 미·북이 가까워질 때, 북한은 한미가 빛 샐 틈 없이 공조할 때, 미국은 남북이 화해 협력할 때 질투심과 경계심 사이를 오가는 행태를 보이곤 한다. 문재인정부는 이러한 삼각관계에 변화를 시도했다. 2018년 초 미국과 북한 간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이 미·북 접근을 독려하면 결국 남북 협력으로 이어져 한·미·북 삼각관계에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북핵 문제를 미·북에 일임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장한 데 있었다. 어디까지나 북한은 자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조건부` 비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북한이 이전부터 오랫동안 고수해 온 비핵화 조건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싱가포르·하노이·판문점으로 이어지는 미·북 정상 간 화려한 만남에도 불구하고 북한 비핵화는 답보 상태다. 그나마 한 가지 성과가 있었다면 북한이 유엔 경제제재 해제를 절실히 원한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기 힘든 한반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대북 경제제재는 매우 소중한 비군사적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북한에 대한 개별관광은 유엔의 대북 제재 위반이 아니다"고 정부 관계자는 얘기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와 공조를 강화해야 할 한국 정부가 북한이 대북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나선 점은 납득하기 힘들다. 관광이나 남북 철도 연결이 미·북 대화 재개를 가져올 수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별관광을 언급한 직후 주한 미국대사가 나섰다. 해리 해리스 대사는 "(개별관광 등 남북 협력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러자 정부·여당·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청와대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했고, 통일부는 "대북정책은 대한민국 주권에 해당한다"고 쏘아붙였다. 여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해리스 대사가 일제 식민통치 시절의 총독을 연상시킨다며 그의 콧수염을 문제 삼기까지 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직후에는 남북이 가까워지는 것을 미국이 질투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미국은 남북 협력에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질투와 경계심을 구별하지 못하면 한미 관계는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개별관광이나 남북 철도 연결 프로젝트가 북한 비핵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즉 북한이 어떤 단계로 핵을 포기할 것인지 국제사회와 합의하고, 단계적 조치에 대한 검증을 보장하면 대북 관광과 철도 연결을 훨씬 뛰어넘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견고한 한미관계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 경우 한·미·북 삼각관계는 한국의 국익을 해치게 된다.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양자택일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을 의식해 우리 정부가 남북 관계를 택한다면 패착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효순·미선 사건으로 인해 촛불 시위가 광화문을 뒤덮었을 때도 여론조사에서 한국인 응답자 과반수가 한미동맹을 지지했고, 한미동맹이 (동북아시아) 지역균형자의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60%가 찬성했다. 반미(反美)는 4월 총선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한미동맹을 포기하면 북한 비핵화도, 국내 정치 승리도 불가능하다. 

[매일경제,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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