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부 ‘기-승-전-북’이 한반도 평화 연다고 오도 말아야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말고, 잘못될 경우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라는 대중선동 전략이었다. 역사상 위정자들이 위기를 은폐하려다 초동대처에 실패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로 이어져 대재앙을 초래한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구 소련) 체르노빌 원전 폭발은 사고 직후 소련 정부가 사고 발생 사실을 숨기려 했으나 스웨덴과 덴마크에서까지 방사능 오염원이 검출되면서 국제적 이슈로 비화했다. 사고 열흘이 지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하기 시작한 정부는 체르노빌 일대를 완전 봉쇄·격리하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을 더 큰 위험에 몰아넣었다. 또 폭발 원인이었던 원자로의 근본적인 설계 결함은 은폐한 채 구멍 난 원자로 위에 석회를 붓는 미봉책만 취했다. 이 폭발은 정부가 진실을 덮으려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동안 누출된 방사성 물질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와 생태계 파괴가 초래된 사상 최대·최악의 원전 사고가 되었다. 

소련의 최대 곡창지대였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이 원전 폭발은 경제난·식량난으로 힘들던 소련의 국내 상황을 한층 더 곤경에 빠뜨렸다. 이 사고를 계기로 더는 철의 장막 속 폐쇄 정책과 비밀주의를 견지할 수 없게 된 당시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하게 된다. 훗날 그는 체르노빌 사고를 소련 붕괴의 결정적 계기라고 회고한 바 있다. 

시진핑 독재가 블랙스완 불러 

중국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도 거짓말의 대가가 무엇인가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였다. 2002년 11월 16일 최초 확진자가 확인됐으나 전날 폐막한 중국공산당 당 대회에서 장쩌민·주룽지 시대가 막을 내리고 후진타오·원자바오로 권력이 교체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쉬쉬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사회 불안정을 가장 두려워한 중국 당국이 정보 통제에만 역점을 두고 방역에 실기(失期)했다. 2003년 4월 퇴역 군의관 장옌융(蔣彦永)은 정부 은폐를 폭로하고 구금됐다. 

그의 영웅적 휘슬 블로잉은 새 지도자 후진타오 주석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전면적 방역을 통해 사태를 호전시키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후진타오의 결단에는 “중국의 안정을 위해 진실은 때로는 숨겨질 필요도 있다”라는 장쩌민식 통치와는 차별된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있었다. 그때까지 실권을 쥐고 있던 장쩌민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후진타오는 안정적인 권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17년이 지난 지금, 사스 경험은 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반면교사가 되지 못한 걸까? 2019년 1월 시진핑 주석은 당·정·군 고위 간부들에게 ‘블랙스완(검은 백조)’ 사태, 즉 발생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일단 발발하면 큰 충격이 되는 상황을 철저히 경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만에 나타난 블랙스완(신종 코로나)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정치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거짓말도 한다”는 식이다. 

후베이성 우한에서는 올 1월 성급(省級) 양회(兩會)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중국 전체로는 최대 명절인 춘절과 3월 양회를 앞두고 대중적 소요와 사회 불안이 발생하는 일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집단 감염 사태가 이어졌는데도 “사람 간 전염은 없다”고 거짓 발표를 하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한 대가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 돼 우한시 모든 주택의 봉쇄라는 초강경책까지 나왔다. 더욱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에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역병은 자국을 넘어 글로벌 전역의 보건·경제까지 위협하는 엄청난 재앙이 되고 있다. 

정치적 은폐·거짓말 시대·사상 구분 없어 

2019년 12월 30일 우한 안과의사 리원량(李文亮)은 SNS를 통해 최초로 신종 코로나의 위험성을 알렸으나 우한 공안국은 그를 괴담 유포자로 몰아 기소했다. 환자를 돌보다 감염되어 그가 사망하자 중국인들의 애도가, 사실을 은폐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더욱이 “앞엔 바이러스, 뒤엔 공안이 있다”라고 우한 실태를 고발한 시민기자 천추스(陳秋實)가 실종되면서 중국 민심은 더욱 들끓기 시작했다. 2018년 3월 개헌을 통해 ‘10년 집권 불문율’을 깨고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진 시 주석이 경제 성장 둔화와 민주화 열망에 이어 전염병 확산으로 최대의 리더십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시 주석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그가 언론 검열, 도시 봉쇄를 통해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는 강경한 통제책을 지속한다면 이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비난받을 일일 뿐 아니라 정권 안정 측면에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조작과 통제로 단기적인 사회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사회적 혼란과 체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시 주석이 아무리 철권통치를 견지한다 해도 지구촌 시민들이 바이러스 불안으로 이 난리인데, 봉쇄 지역에 갇혀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 몇천만 명의 인내심의 한계가 무한정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문득 1911년 청을 몰락시키고 중화민국이 태어난 계기가 된 신해혁명이 일어난 곳이 우한지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뇌리를 스치며 섬뜩해진다. 

더욱 섬뜩한 것은, 정치에 도움이 되면 어떠한 은폐나 거짓말도 불사하는 현상은 비단 전체주의나 공산주의적 정치 체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떠한 정치체제와 구조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 비핵화 쇼에 정부 놀아나 

기-승-전-북(北)으로 일관하며 2018~2019년 “핵·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자축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핵도 갖고 제재도 풀겠다는 북한의 속내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대실패로 돌아갔다. ‘가짜 평화 쇼’ 와중에도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통적 관계를 돈독히 하는 등 실속을 챙겼는데, 우리는 틈만 나면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완화를 호소하고 친북·친중 쏠림 외교로 인해 우방국과의 관계까지 소원해졌다. 이러한 우리 정부의 애절한 대북 포용 노력에도 불구하고 판문점 선언은 파탄 났고, 우리 대통령은 ‘소대가리’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생일축하 메시지 전달과 관련해서는 주제넘게 나서지 말라는 망신만 당했다. 

“진정한 위험은 거짓말을 하도 많이 듣다 보면 무엇이 사실인지를 알 길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HBO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대사를 중국 우한의 누리꾼이 자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 대응을 비판하며 인용한 구절이다. 이제 더는 김정은의 방한이나 북한 개별 관광을 추진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재추진의 동력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빅 라이’로 국민을 오도하지 말자. 남북 경협을 통한 평화 경제로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국민을 기만하지 말자. 

이제라도 우리 정부는 애당초 진정성이 없었던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를 선의로 과대 해석하여 그들의 비핵화 쇼에 놀아났던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안보협력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핵보유국 북한이라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외교·안보·군사전략으로 맞설 것인가 범국민적·범사회적 합의를 모아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중앙일보, 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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