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트럼프 ‘대북 모호성’과 北도발 경고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135일 동안 옭아맸던 탄핵안이 지난 5일 미국 상원에서 부결됐다.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군사 지원을 대가로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을 조사하도록 압박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시작된 탄핵 정국이 종료된 것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탄핵 정국이 종료됐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그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사라졌을 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출간할 회고록이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가 나와 선거 판도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공헌을 했던 ‘러스트 벨트’(Rust Belt: 미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의 민심도 녹록지 않다. 상원 탄핵안 표결 직전 여론조사에서 오하이오주 응답자 45%, 미시간주 49%가 올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고 답변했고, 위스콘신과 미시간주 50%, 펜실베이니아주 49%가 탄핵에 찬성했다. 러스트 벨트 유권자 56%만이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무역정책을 지지한다.

실생활과 동떨어진 외교안보 정책은 미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핵심 지지층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정책과 통상정책을 우선하고, 외교안보는 현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중동에서 이란을 봉쇄하고,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의회에서 행한 2020년 국정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 것이다. 그 모호성 속에 담긴 분명한 메시지는 ‘북한을 비난하지 않았으니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와 같은 전략 도발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공언한 ‘새로운 전략무기’ 시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도발을 차단하기 위해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나 그가 원하는 선물, 즉 유엔 안보리 5개 핵심 제재 결의를 해제하기 힘들다.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는 대가로 대북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면, 북한 비핵화를 위한 거의 유일한 전략 수단인 경제 제재를 그의 재선을 위한 미끼로 던져버렸다는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물론 북한이 ICBM 도발을 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나, 대응 각도에 따라 비난의 화살이 평양 또는 베이징이나 서울을 향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 제재와 핵 억제력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막고 한국에 의한 대북 지원을 자제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4일 일본과 대규모 공군 연합훈련을 했고, 5일 새로운 대기권 재진입체를 탑재한 (30분 만에 평양을 타격할 수 있는) ‘미니트맨 3’ ICBM을 시험 발사했다. 한국의 대북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0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회의 등을 통해서는 원칙을 강조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으로 인해 중국과의 국경도 봉쇄한 북한은 한국의 개별 관광을 받아들일 처지가 못 된다. 한·미 워킹그룹회의를 비롯한 미국과의 협의에서 우리는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북한이 새로운 전략무기를 시험할 경우 단호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문화일보, 2020-02-1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210010731110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