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로나 극복 경험, 한국 공공외교 발전의 자양분 될 것"

이근 서울대 교수,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초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선진화된 시민의식과 우수한 공중보건 시스템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우리의 장단점을 균형 있게 소개하면 한국 공공외교에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근 (57·사진)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은 지난 1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가적 재난을 극복한 경험이 한국 공공외교 발전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스크 대란 등 위기상황에도 차분하게 대처하는 우리 국민의 선진화된 시민의식과 우수한 공중보건 시스템이 한국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이사장은 “시민정신에 놀랐다. 보통 마스크 대란이 발생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우리는 시민들이 잘 대처하고 있다”며 “공중보건 시스템과 시민의식은 우리가 상당히 선진화됐다고 다른 나라에 강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전 세계는 한국의 우수한 코로나19 대처에 주목하고 있다. 11~12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하원의 정부감독개혁위원회 청문회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근거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역대책을 비판했을 정도다.

이 이사장이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한 경험을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하는 것은 공공외교에 대한 그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자국의 정책을 설명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확산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등 오늘날 공식외교의 70%는 공공외교라고 본다”고 말했다. 공공외교는 냉전시대에는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문화외교였고 현대사회에서는 국가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이사장은 “정부부처인 외교부와 달리 국제교류재단이 그동안 쌓은 자산은 신뢰다. 지원을 하되 지원한 것을 가지고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지원받는 기관에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입장에 반하면 제재를 가하겠다는 이미지가 상대국에 생기면 공공외교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코로나19 사태를 모범적으로 극복할 경우 공공외교의 핵심목표인 한국에 대한 신뢰가 자연스럽게 쌓일 것이라는 게 그의 기대다. 이 이사장은 국난을 극복한 경험을 활용한 사례로 일본의 공공외교를 꼽았다. 그는 “일본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국가 이미지가 안 좋아졌다”며 “일본 당국은 사고의 전체적인 발생경위와 대처과정이 담긴 보고서를 만든 뒤 영어에 능통한 전문가들을 해외에 파견해 자신들의 노력을 상세히 설명하며 신뢰를 확보했다”고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일본의 후쿠시마 사례와 같이 한국이 코로나19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설명하는 보고서가 작성되는대로 우리의 사례를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이 이사장은 국제교류가 많은 세계화 시대에 코로나19 사태 같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만큼 민간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보건의료 공공외교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특히 외교·안보 전문가인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이 주장한 보건의료대사직 설치를 시의적절한 제안이라고 호평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이 또 일어날 수 있는데 외교부에 보건의료 전문가가 없다. 외교부 장관도 해당 지식이 부족한 만큼 상대국과 교섭할 때 정무적 판단이 잘 안 될 수 있다”며 “보건의료대사가 이번 계기에 만들어지면 외교부에서 팬데믹 상황이 발생할 때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한국에 대한 전 세계인의 이해를 높일 한국학 보급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한류나 기업의 테크놀로지(과학기술) 등 한국학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며 “KF도 한국학의 위상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학을 보급하기 위한 KF의 노력은 △미국 하버드대·예일대·컬럼비아대 및 영국 옥스퍼드대를 포함한 해외 16개국 91개 유수 대학에 한국학 교수직 136석 설치 △외국인 7,000여명에 대한 한국 연구 지원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이 이사장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BTS) 등 전 세계인의 관심이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한국으로 향하는 지금이 한국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적기라고 봤다. 이 이사장은 대형 연예기획사와 협력해 KF의 공공외교 활동을 홍보하고 한국의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한류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과 협력하면 KF의 공공외교 작업환경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포럼도 하고 한류 행사에 저희가 지원하는 등 문화교류 협력을 통해 좀 더 이를 활성화할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이사장은 한류를 활용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한류의 흐름을 타고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류의 본질은 한국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면 상업교역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며 “한류가 확산할수록 우리 문화산업이 커지고 수익이 많아진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고 그 공간에서 우리의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외교환경도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문화 공공외교에서 잊지 말아야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말했다. 그는 아세안문화원이 지난해 12월 개최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정상들의 관심을 받은 것도 이 같은 배려의 가치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제1회 한·아세안 정상회담(2014년 개최)을 기념하기 위해 총사업비 173억원을 들여 지난 2017년 9월 개장한 아세안문화원은 한국과 아세안 국가 간 공공·민간 협력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게 아니라 아세안 문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진정성을 평가받을 수 있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정상회담 때도 아세안 정상들 입에서 아세안 문화원 얘기가 많이 나왔다”고 흐뭇해했다. 아세안문화원을 통해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도왔던 이 이사장은 유라시아문화원 설립 등으로 정부의 신북방정책에 대한 측면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다. 그는 “북방 국가들과 급진적으로 뭔가 성과가 이뤄지기는 어렵지만 문화·의료·보건 분야는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며 “외교부와 협의해 유라시아문화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아세안문화원과 차별되는 것은 문화기능에 더해 의료교육까지 하려는 것”이라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이사장은 지식공공외교 측면에서 스웨덴을 주목하고 있다. 스웨덴은 노벨상의 본산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 이슈를 주도하는 국가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한류의 첨병 역할을 하는 음악산업 분야에서도 스웨덴은 강국으로 분류된다. 그는 “스웨덴에 사무소를 설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아직 한국에서 학술 노벨상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의 우수한 학술적 성과가 많은 만큼 노벨상의 본산인 스웨덴에 이를 많이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며 “주요7개국(G7) 중 노벨상을 수상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려면 학술 노벨상과 문학·경제학상을 수상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스웨덴이 다루는 의제가 복지 및 젠더 문제 등 상당히 선진적이라 이들과 교류하면 우리도 선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질서와 국제정치를 평생 연구해온 국제학 전문가이기도 한 이 이사장은 인터넷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만큼 플랫폼 냉전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치·경제·문화 등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이 인터넷 플랫폼의 영향을 받는 만큼 이를 지배하려는 강대국 간 패권전쟁이 심화할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이사장은 “예를 들어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플랫폼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의 영역을 두고 경쟁이 이미 2년 전부터 시작됐다. 플랫폼 냉전은 한국의 안보·경제에도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 있다”며 “이에 대처해 잘 대비하는 것이 미래를 좌우할 100년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은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장비가 중국의 스파이 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안보상의 이유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반(反) 화웨이 전선 합류를 압박한 바 있다. 

[서울신문, 20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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