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방위비 협상, 美 세계전략과 맞물려…‘비용 분담’ 보다 ‘역할 분담’ 중요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 ‘방위비분담금 협상’ 어떻게 봐야 하나

한·미 동맹은 한국 안보의 핵심축이다. 그러한 축이 작동하는 기저에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이 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대(對)북한 및 지역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특히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북한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다뤄져야 한다. ‘비용 분담’보다 ‘역할 분담’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분담금 문제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공고히 하고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등 미국의 세계·지역 전략과 합치되게 하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트럼프 시대의 분담금 협상

1989∼1990년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미군 감축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노태우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했다. 심층 협의 끝에 한·미 양국은 1991년 1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5조, 즉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은 미국이 전액 부담한다”는 규정에 대한 ‘예외규정’으로 특별협정(SMA)을 체결했다. 한국도 미군의 주둔비용을 분담하기로 하고 붙잡아 둔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판단은 옳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북핵 위기가 터졌고, 한반도는 탈냉전이 아닌 ‘냉전의 마지막 빙산’으로 남아 있게 됐다. 북핵 문제는 한국의 문제이자 미국의 세계전략과 연결된 문제이기에 SMA는 한·미 동맹을 더욱 단단히 묶어주는 기제가 됐다.

미국이 한국 내 미군기지에서 부담하는 주둔비용(한국에서 고용하는 근로자 인건비+군수비용+군사건설)과 한국의 주둔비용 지원액(방위비 분담금)을 합친 비용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40.2% 정도 된다. 미국의 동맹국인 독일의 11%보다 훨씬 높고,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일본의 45.1%보다 다소 낮다. 그러나 일본의 분담금 속에는 주일미군 기지 땅값이 포함돼 있고 우리는 주한미군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므로 실질 분담률은 일본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무려 1467만7000㎡(약 450만 평)에 달하는 평택 미군기지 건설비용의 90% 이상을 한국이 부담했다. 국내총생산(GDP)의 2.6%를 국방비로 쓰는 한국은 세계 3위의 미국산 무기 구매국이다. 눈에 보이는 비용만 따진다면 국방비를 GDP의 2%도 안 쓰는 유럽 동맹국들처럼 한국이 ‘무임승차(free-ride)’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고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피나는 노력과 더불어 한·미 동맹이라는 강력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이다. 첫 번째 시험대가 2018년 10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었다. 당시 우리는 우리의 부담액을 1조 원 이상으로 올리지 않기 위해 ‘무리한’ 협상을 하다가 1조389억 원에서 막되 유효기간을 1년으로 하자는 미국 측 제의를 받아들였다. 통상 3∼5년마다 하던 협상을 1년 후에 다시 하게 된 것이다. 2019년 11차 협상이 시작됐지만,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분담금을 (기존의 다섯 배인) 45억∼50억 달러로 제안하면서 협상이 어려워졌다. 우리 협상대표가 지난달 31일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 타결이 임박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협상을 지시하면서 막판 진통을 겪는 중이다.

◇대(對)북한·지역 전략 고려하는 협상

이번 협상이 어떻게 결론이 나건 우리는 이제 방위비 분담 문제를 대(對)북한 및 지역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북한의 위협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이며 이를 위해 한·미 동맹을 어떠한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우리에게 제공하는 ‘핵우산’을 얼마나 신뢰할 것이며, 이것이 충분치 않다면 우리가 어떤 분야에 어떻게 전력을 보강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미국 무기 구매는 첩보위성이나 고성능 정찰기와 같은 감시정찰자산 확보, 탄도미사일 요격체계 완비, 특수부대를 대규모로 적 후방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송 능력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SMA 차원을 뛰어넘어 한·미 고위급 전략대화 차원의 조율이 필요한 문제다.

둘째, 우리 정부가 미국산 무기 구매에 많은 비용을 쓰는 모습은 감추고 SMA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마치 한·미 동맹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2018년 10차 협상은 우리 정부가 이 점에 너무 매몰돼 1년짜리 합의를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1년 뒤 미국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액수를 요구받게 됐다. 지난해 12월 미국 측 제임스 드하트 협상대표는 한국 측 분담금에 미군 순환배치 비용을 포함하려는 점을 시사했다. 앞으로 북한의 전략 도발이나 재래식 도발이 예상된다면 미군 전략자산의 순환 배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북한 핵에 대한 억제 차원에서 미국의 전술핵을 탑재한 핵잠수함이 동해에 순환 배치될 경우도 고려해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SMA를 방위비 분담 핵심 협정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SMA 기존 항목에 군수 관련 무기 도입이나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정액이 아닌 발생 소요에 따라 분담하는 방안을) 포함하는 협상을 전개할 수 있다.

◇비용 분담과 역할 분담

마지막으로, 분담금 문제를 단지 비용의 문제로만 접근하지 말고 한·미 간 ‘역할 분담’ 차원에서 잘 녹여내야 논란의 소지가 줄어든다. 한·미 동맹은 기본적으로 군사동맹이고 그 범위가 한반도에 한정된다. 그러나 외교 및 전략적 관점에서는 동북아 및 아태지역과 분리될 수 없다. 냉전 시기에 한·미 동맹은 북한을 억제하는 게 목표였지만 그와 더불어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지역 전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국의 국익에 한·미 동맹이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한·미 동맹이 미국의 세계 및 지역 전략과 가급적 합치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을 필요가 있다. 동북아와 별개로 동남아 지역에서도 미국의 전략이 소기의 성과를 내도록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략적 리더십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동남아 정책 목표 실현에 도움이 되도록 동남아에 대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정책을 미국과 협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남중국해가 중국의 내해(內海)가 아니라 항행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제 수역이라는 원칙을 한국이 확고히 견지해 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탬이 된다.

역시 가장 중요한 역할 분담은 동북아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있는 유엔사령부 후방기지를 통해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하고, 한국은 일본과 안보 협력을 잘 해나가 한·미·일 관계를 이간시키려는 중국의 전략이 먹히지 않게 하는 게 실질적 역할 분담이다. 따라서 역할 분담이 비용 분담보다 훨씬 중요하다. 역할 분담 없는 비용 분담은 거래적(transactional) 차원의 관계에서 끝나지만,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된 비용 분담은 전략적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내구성과 지속성을 갖게 된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

[문화일보, 2020-04-07]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40701030242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