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올가을 北최악 식량위기…김정은, 11월 美대선 기다릴 여유없어“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북한이 16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감행한 뒤 17일에는 개성과 금강산에 대한 군대 배치 등 대남 군사도발 의지를 천명했다. 개성 사무소 폭파 직후 매일경제는 북한전문가 3인을 초청해 긴급 좌담회를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공세가 지난해 미·북정상회담 실패 이후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고, 앞으로 남북군사합의를 깨버리는 북한의 조치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이 예고대로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는데.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북한의 대미지가 클 것이다. 엄연히 소유권이 한국에 있는 건물이다. 금강산관광 사업권을 몰수한 것도 북한의 신뢰도를 추락시켰다. 27개 경제개발구를 지어 국제자본을 유치하겠다면서 이렇게 하면 누가 투자하겠나. 국내 여론도 악화돼 문재인정부가 북한에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좁아졌다. 자신들이 얻는 것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이미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경험이 있어서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 여기서 더 가속화된다면 북 내부에서도 김정은이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북한은 지금 남북 간에 뭘 해보겠다거나 얻어내보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핵보유국 지위를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시점을 보는 것 같다. 경제제재를 당하지 않고 핵보유국이 된 인도, 파키스탄처럼 되려고 하지만 미국이 볼 때 북한은 다르다. `제재 없는 핵보유국`은 실현 불가능하다. 북한이 과거 연평도를 포격할 때 `핵을 갖고 있는데 남측이 대응하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자주포로 반격해서 북한이 타격을 입었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에는 우리가 강경한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 도발의 배경으로 경제난이 가장 먼저 꼽히는데. 

▷조한범=지난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회의를 주재했는데, 4개항 의제 가운데 두 번째가 `평양시민의 생활 보장`이다. 이 말이 왜 나왔겠는가. 평양조차도 힘들다는 말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 산하 연구소 예측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올해 성장률이 -6%를 기록할 전망이다. -6.5%를 찍었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셈이다. 지난 수년간 가뭄 피해를 입었는데 올해는 대북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국경 봉쇄로 봄철 비료 수급이 안 됐다. 코로나19에 따른 휴학으로 학생들의 농촌 지원도 안 됐다. 가을에는 식량위기가 최악의 상황에 놓일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중국도 어려워서 북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 올해 들어 김정은의 경제 행보가 예년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홍보할 만한 성과가 없으니까 갈 데도 없는 거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유엔 제재로 인해 해외 근로자 10만명 중 상당수가 지난해 말 귀국했다. 북한은 당초 중국, 러시아에 단기비자로 이들을 다시 내보내려고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밀무역도 어려졌다. 김정은 집권 후 주력한 게 관광사업인데 삼지연, 원산갈마지구, 양덕온천 등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외화를 들여올 데가 없다. 지난 4월 공채를 발행한 것도 국영기업과 돈주들에게 할당해 외화를 끌어내려는 조치다. 

―김여정이 대남 공세를 지휘하는 동안 김정은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윤덕민=독재정권들은 후계자를 키우는 과정이 있지만 형제간에는 선례가 없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현재 정황으로는 김여정이 후계자급 지위를 확보한 듯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한반도 위기가 높았던 때 이를 극복하면서 김정일이 후계자 지위를 굳혔다. 김정은의 경우에도 느닷없이 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이어 `청년장군` 칭호를 얻어 후계자로 부상했다. 

▷조한범=독재정권은 기본적으로 측근정치에 의존하고, 말기적 증상이 가족정치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과 이라크 후세인도 가족들이 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을 장악했지만 붕괴를 막지 못했다. 북한의 가족정치는 김여정의 평창 등장 때부터 시작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했을까. 김정은의 권력 누수는 아니고 역할 분담을 한 것 같다. 김정은은 권위를 내세우고 정상회담 같은 데만 나서는 방식이다. 북한에서 최초로 2인자가 나타난 것인데, 가족정치는 독단적 의사결정 위험을 높인다. 

▷조성렬=김정은이 나서지 않는 것은 향후 남북 또는 북·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뒀을 때 최소한의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김여정이 남측에 대한 `대적행동권`을 전략군이 아닌 총참모부로 준 것이다. 전략군은 `친솔군종`이라 해서 김정은 직속 부대다. 핵미사일을 운용하는 주체다. 총참모부가 전면에 나선다는 것은 대남 도발에 주력하고,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은 당분간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이 한미동맹 약화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한범=한미 균열을 노릴 정도로 북한이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 김정은의 시간표에 미국 대선은 없다고 봐야 한다. 대선은 11월인데 이미 그 전에 위기가 닥쳐온다. 노동당 창건 75주년이 10월이고 그 전에 인민들에게 성과를 내보이고 싶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군을 줄이겠다고 한 독일과 한국도 상황이 다르다. 러시아의 힘이 빠지면서 유럽에서는 사실상 안보 위협이 사라졌고 미군을 빼더라도 치명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한반도 바로 옆에는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이 있다. 의회가 견제하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독단으로 주한미군은 감축할 수도 없다. 

▷윤덕민=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장관 회고록에도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철수하라고 하며 동맹에 부정적 견해를 보인 게 나온다. 대통령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엔 시스템이 있고 의회에서 생각하는 주한미군의 중요성이 있어 주한미군 철수는 실현되기 쉽지 않다. 북한이 약한 고리인 남측을 때리는데 정부가 "북한은 잘못이 없고 (제재를 가하는) 미국이 문제"라는 논리를 펴서는 안된다. 정치권에서 자꾸 그런 말이 나오면 한미 간 동맹 갈등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북한 군부가 9·19 군사합의 파기 수순을 밟고 있는데. 

▷조성렬=앞으로 해안포를 봉인 해제하고 사격 훈련을 시작할 것 같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위협하는 행위도 우려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병들에게 총기를 휴대하게 해 군사합의 파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만약 탈북민단체가 다시 대북전단을 살포할 경우 북한군이 총격을 가할 수도 있다. 

▷조한범=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바로 쏘기엔 아직 이르고 신형 잠수함을 진수하는 장면을 보여줄 수는 있다.

남북군사합의 항목이 굉장히 많은데 앞으로 순차적으로 깨나갈 듯하다. 금강산지구 내 우리 측 시설도 철거할 수 있다. 다만 미국까지 직접 자극하지는 않을 듯하다. 미국과 패권경쟁 중인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2020-06-18]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20/06/627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