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결정적 전환’ 위한 결연한 對北 정책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현재 북한은 내부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유엔안보리 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올 1월부터 북·중 국경을 폐쇄해 중국으로부터 생필품이 거의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 7일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평양시민 생활 보장을 위한 당면한 문제’를 논의했다는 북한 매체의 보도는 경제적 어려움이 핵심 계층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15일 오전에 북한이 북·중 국경 일부를 개방하고 이튿날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무릅쓰고라도 국경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감 속에 한국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미국에 본격적인 도발을 자행하겠다는 신호탄을 쏜 것이다.

그러나 경제 제재는 북한이 1990년대 초부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해 핵을 개발하고 유엔안보리 결의를 무시하며 6차례의 핵실험과 무수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했기 때문에 자초한 일이다. 북·중 국경 폐쇄 역시 ‘위대한 존엄’과 평양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북한이 취한 자발적 조치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어려움을 마치 한국이나 미국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본말이 한참 전도된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남북관계는 물론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가 정상화돼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몇 배 나은 생활을 북한 주민이 누리게 된다. 근본적 문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이러한 선택을 할 생각이 없다는 데 있다. 군사적 위협과 체제 보장을 해주면 핵 개발을 포기할 것처럼 말하지만, 내심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외에는 ‘김씨 왕조’의 체제 보장을 해줄 수 없다고 믿는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점은,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사태가 지난 25년 동안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제재를 가할 때 기대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경제 제재의 고통으로 인해 핵을 포기하지 않고는 정권안보가 위험하다고 판단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 북한은 향후 점차 수위를 높여 한국, 주한미군, 미국 본토를 겨냥한 도발을 자행할 것이다.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우려해 대북 제재를 해제해 주거나 한국과 중국이 나서서 북한의 경제난을 덜어줄 묘책을 마련하길 기대할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전술에 넘어가지 않고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결연한 의지와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서해 5도를 비롯한 전방의 경계 태세를 물샐 틈 없이 유지하고,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히 대응한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의 군사도발이나 전략도발이 자행되는 순간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에 중단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할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진보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라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이 과연 한국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지 냉철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 동맹을 맹신한다고 보수정부를 비판해온 진보 정부가 미국의 핵우산에 ‘안주’하면서 핵을 가진 북한이 한국의 안보를 무력화하고 남북관계를 쥐락펴락하는 것을 수수방관한다면 정부의 기본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올가을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이라면 북한을 달래는 데 급급해할 게 아니라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핵과 경제를 다 갖겠다는 김정은의 망상을 비핵화로 돌리는 ‘결정적 전환’이 가능해진다.

[문화일보, 2020-06-22]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622010731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