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일부국가 코로나 사태 악용, 권력분립 무시… 권위주의 확산시키고 민주주의 후퇴시켜“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장 모네 석좌교수

"코로나 대유행이 권위주의를 확산시키고 비(非)민주적 조치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부가 더 강한 행정권력을, 심지어 입법권력까지 휘두르고 있지요.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코로나 상황을 악용하고 있는 겁니다."

셸 망네 본데비크(73) 전 노르웨이 총리는 28일 '코로나 이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진행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웨비나에서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목격하며 우려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본데비크 전 총리는 1997~2000년, 2001~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낸 노르웨이의 최장수 총리다. 본데비크 전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전후로 김 전 대통령과 공식·비공식 회담을 갖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가 정계 은퇴 후인 2006년 설립한 오슬로 평화인권센터는 김대중도서관과 지금까지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날 ALC 웨비나는 본데비크 전 총리가 오슬로에서, 이재승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가 서울에서 각각 화상회의로 만나 대담을 나눴다.

◇"코로나가 민주주의 시험 중"

본데비크 전 총리와 이 교수는 코로나가 민주주의에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 이후 격리·보건·경기부양 등 강력한 국가가 등장하면서 권력분립이 무시되고 사법부·입법부가 행정부에 종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본데비크 전 총리는 "민주주의 핵심 가치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권력분립의 원칙"이라면서 "현재 코로나가 민주주의를 시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코로나 때문에 국가 권력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장기간 비대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본데비크 전 총리는 "앞으로 민주주의는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약자 등 소수를 보호하는 포용적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민주주의라며 승자독식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위치 추적을 위해 개인의 휴대폰 기록을 열람하는 등 프라이버시(privacy·사생활)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본데비크 전 총리는 "코로나와 같은 유행병 관련 개인 정보는 오랜 시간 보관하게 되면 잘못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위험이 있다"면서 "정보를 검색하고 결합하고 활용하는 기술이 매우 빠르게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를 위한 명확한 법적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북한 인권 문제, 외면하지 말아야"

본데비크 전 총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오슬로 평화인권센터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2006년에는 북한 인권보고서를 내고 유엔에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을 요구하기도 했다.

본데비크 전 총리는 이날 ALC 웨비나에서 현재 북한 인권에 대해 "종교와 표현의 자유도 없는 북한의 인권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남북 또는 미·북 대화의) 어젠다(agenda·논의 대상)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당시 성사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언급하며 "50년간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재회하는 장면은 인상 깊고 강렬했다"며 "이 같은 사람 간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나가는 게 남북 관계 발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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