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韓 친일청산 논란·日 야스쿠니 참배...한일 경색 장기화하나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신각수 전 주일대사,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아직도 대답이 없다. 오히려 문 대통령의 대화 강조에 대해 일본 정부 고위당국자가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일본에 양보를 강요하는 종래 입장에 변화는 없다”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고 16일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이에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17일 “(요미우리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유감”이라고 맞받았다.

문 대통령이 대화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일본이 화답은커녕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해법에 대한 양국의 간극이 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일본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명시한 헌법 10조를 언급한 것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헌법 10조의 강조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에 양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많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처음으로 밝힌 만큼 오히려 지난해보다 대일 기조가 더 강경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향후 한일관계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양국이 외교적 노력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위기관리에 나서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양국이 타협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 법원의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 절차가 시작되는 것이다. 결국 한일관계의 미래는 강제징용 문제의 타협점을 찾는 데 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강제징용 피해자 단체 측의 강한 비판을 받은 뒤 흐지부지됐지만 자발적인 한일 양국 기업·정부의 출연과 국민의 성금을 통해 피해자 배상금을 마련하자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안은 여전히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거론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도 “한국 정부, 일본 기업, 한국 기업 등 3자가 피해자들에게 조치를 해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며 “국회에서 입법을 해야 대법원 판결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외교가에서는 강제징용 해법 문제가 방법론의 문제라기보다 양국 정상 간 의지의 문제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예상되는 한국 법원의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 절차 집행 직전에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인 11월 한중일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가 2년 이상 대치한 사안이기 때문에 외교당국자보다 한중일 정상회담 때 정상 간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아베 정부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그 모멘텀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런 측면에서 한일 양국에 휘몰아친 민족주의는 정상 간 톱다운 외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한일 조야에서는 각각 광복절과 태평양전쟁 패전기념일을 맞아 정권의 지지 기반을 중심으로 대일 및 대한 강경론에 힘을 싣는 민족주의 광풍이 일었다. 한국에서는 15일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 논란과 관련해 여권을 중심으로 ‘친일 청산’을 강조하며 지지층의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 정부도 혐한 분위기 조성에 앞장섰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등 아베 내각의 각료 4명은 패전일인 15일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아베 정권의 역사관에 의구심을 품게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광복회장의 친일 청산 발언은 한국이 어떻게 국제사회와 산업·무역·투자를 통해 연결돼 있고 국민 생활이 얼마나 개방된 국제사회에서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 같다”며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갈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경제,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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