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맹과 실리 사이 ... 유럽 가스파이프 공사 놓고 美·獨·러 갈등 點火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장 모네 석좌교수

북유럽 발트해의 차가운 해저에 놓인 가스 파이프라인이 뜨거운 갈등을 만들고 있다. 러시아와 독일을 연계하는 ‘노드 스트림(Nord Stream)’ 파이프라인의 첫 번째 노선은 2011년 완공되어 매년 550억㎥ 가스를 공급하고 있고, 이를 두 배로 증대시키는 ‘노드 스트림 2’ 프로젝트는 총구간 1225㎞ 중 불과 160㎞를 남겨놓고 있다. 이 해저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면 독일은 유럽 가스 공급의 새로운 허브로 등장하게 된다. 950억유로(약 13조원)의 공사 자금은 러시아 가스프롬과 유럽계 회사들이 절반씩 부담하고 있다.

독일은 냉전 시기부터 러시아와 가스 교역과 파이프라인 건설에 참여하며 에너지 및 장비 산업 기반을 축적해 왔다. 또한, 탈(脫)석탄과 탈(脫)원전을 동시에 진행하며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스 공급의 확대는 재생에너지 증대와 더불어 핵심적인 필요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진행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국, 그리고 통과료 수입의 감소가 예상되는 기존 동유럽 파이프라인 경유국들은 반대 입장을 취했다. 미국은 적대국 제재법(CAATSA)을 통해 압박을 가해 왔다. 2019년 미국은 국방수권법의 하나로 유럽 에너지 안보 보호법을 신설하면서 기존의 제재 예외 방침을 취소하고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천명했다. 이에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알시스(Allseas)사는 마지막 구간의 사업을 포기했다. 러시아 가스프롬이 독자적으로 잔여 구간 공사를 시작했으나, 제재 대상을 확대시키는 법안이 지난 7월 미국 상·하원에서 통과되면서 다시 발이 묶였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공사가 진행 중인 덴마크와, 주요 파트너인 오스트리아를 잇달아 방문하며 미국 입장을 피력했다. 독일은 법 규정의 번복과 내정 간섭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노드 스트림 파이프라인은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 동맹 내부의 불협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외형적으로는 유럽의 대러 에너지 종속을 방지하고,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 증대를 우려하고 있으나, 동시에 자국산 LNG의 유럽 시장 진출 확대를 모색한다. NATO 회원국들 간 방위비 분담 분쟁도 얽혀 있다. 독일은 2019년 기준 GDP 대비 1.38%의 방위비를 집행했고 2031년까지 목표치인 2% 선까지 올릴 계획이나, 미국은 유럽 측의 미온적인 태도에 비판적이다. 한편 미국은 현재 주요 거점인 3만6000명 규모 독일 주둔 미군을 1만2000명가량 감축하여 6400명을 미국에 복귀시키고 5600명을 유럽에 재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독극물 테러 사건은 독일 내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여론을 강하게 부각시켰고, 노드스트림 2 사업을 중단하라는 의견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조원이 투입된 프로젝트를 불발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의 압력과 동유럽 국가들 반발, 그리고 국내 정치적 여론 속에 메르켈 총리의 딜레마는 커지고 있다. 안보와 경제, 외교가 뒤엉킨 고차방정식이 된 노드 스트림 프로젝트의 해법은 미국 대선 이후로 미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독일이 가진 자본력과 기술력은 대러 관계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견제력이자 유인책이 된다. 현재 유럽에서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레버리지를 동시에 보유한 나라는 독일이 거의 유일하다. 외교에 있어 독일의 입장은 신중하다. 요란한 정치적 구호를 외치기보다, 외교적 명분과 EU의 대표성, 그리고 자국의 경제적 실리를 잃지 않는 행보를 보여 왔다.

미국과 유럽은 종종 갈등을 겪어 왔고, 이라크전이나 이란 핵협정 등과 관련한 이견이 노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유럽 간의 대서양 동맹은 여전히 미국 동맹 구조의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된 동맹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 시기를 항상 모색해 왔다. 동맹 내부에서의 전략적 자율성은 신뢰와 구심력, 그리고 핵심 역량을 전제로 한다. 정보력과 역량이 갖춰진 상황에서 복원력이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 독자적인 행보가 가능하다.

한국의 대유럽 전략은 종종 미국과 유럽이 보이는 간극을 파고들며, 유럽을 미국을 우회하는 대북 정책의 기제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종종 착시를 낳게 됐고, 자칫 동맹국 간의 신뢰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 유럽은 대화 기조와 교류 협력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만, 핵 비확산과 인권 등 핵심 의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굳건한 동맹국으로서의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전략적 자율성을 논의할 대유럽 외교는 신중한 어법과 형식의 선택이 중요하다.

가진 것보다 말이 앞서 나가면 외교적인 치부가 된다. 동맹 외교라는 큰 틀에서 전향적인 글로벌 의제에의 참여를 전제로 접근이 이루어져야 유럽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미국의 약한 고리를 활용한다는 접근은 실리와 동맹을 모두 놓치게 할 수 있다. 유럽은 한미 동맹에서 느슨해진 한국을 결코 반기지 않는다. 신뢰에 기반한 구심력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향후 막대한 재원이 수반되는 여러 경협 사업이 한순간에 물에 잠길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발트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스 파이프라인의 지정학은 명분과 실리, 그리고 안보와 경제 간의 치열한 동맹 외교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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