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엔 75주년과 한국의 다자외교

신각수 前 주일대사

10월 24일은 유엔헌장 발효를 기념해 제정한 유엔의 날이다. 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 대한 반성으로 다자주의를 통해 국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은 올해로 75주년을 맞았다. 지구상에서 한국만큼 유엔과 밀접한 연을 맺은 나라는 드물다. 유엔의 날이 1975년까지 법정 공휴일이었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도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면서 한국 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되어 유엔 감시하에 선거가 실시된 덕분이다. 1950년 북한이 남침했을 때도 유엔 강제 조치의 일환으로 미국을 주축으로 16개국이 참전한 유엔군 덕분에 적화를 모면하였다. 1953년 이후에는 유엔사가 한국군과 참전 16개국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정전 관리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 유지 기능을 담당해 왔다. 유엔한국재건단(UNKRA) 등 유엔 총회가 설립한 기관들이 1950년대 전후 복구 과정에서 다양한 경제사회적 지원을 제공하였다. 한국은 이에 힘입어 분단과 전쟁의 힘든 시기를 넘기고 산업화·민주화를 거쳐 수원(受援) 개도국에서 OECD 회원국으로 탈바꿈한 유엔 지원의 모범 사례다.

불행히도 한국은 북한 반대와 냉전으로 인해 유엔 회원국이 되지 못하고 냉전기간 옵서버로 참여하는 데 그쳤다. 우리 정부는 1949년, 1956년, 1975년 세 차례 유엔 가입을 신청하였으나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해 좌절되었다. 냉전 종식 후 1991년에야 남북한 동시 가입으로 늦깎이 회원국이 되었다. 유엔은 다자외교의 주된 무대라는 점에서 40여 년의 긴 공백은 우리 다자외교에 상당한 핸디캡이었다. 옵서버는 투표권 부재, 비공식회의 불참, 발언 순서 후위 등 여러 면에서 매우 불리하다. 지난 19년 동안 한국은 후발 주자로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이제는 유엔에서 중견 국가로서 위상과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평화·개발·인권의 3대 목표를 추구하는 유엔은 전후 질서의 근간인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핵심을 이룬다. 유엔은 냉전기에는 양극 체제의 대립과 5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가 무력충돌에 개입하지 못해 근간인 집단안전보장이 유명무실해졌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캐나다 주도로 평화유지군(PKO) 제도가 만들어져 정전 감시와 평화 회복을 지원하였다. 개발과 인권 분야는 경제사회이사회와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기능적 접근을 통해 착실히 발전하였다. 탈냉전 이후 안보리가 다수의 무력충돌과 내전에 개입하여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2005년 유엔 개혁을 통해 인권이사회·평화구축위원회, 2010년에는 유엔여성(UN Women)을 설립하였다. 세계화로 인해 다양한 글로벌 이슈가 등장하면서 세계 규율(global governance) 차원에서 유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중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에 일방주의로 흐르고 주요국들은 강대국 외교를 전개하면서 다자주의와 협력외교가 위협을 받고 있다. 안보리에서 거부권 행사가 늘고 강대국 간 이해 충돌로 유엔에서 합의가 어려워졌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세계보건기구와 주요국들이 협력적 접근을 했더라면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국가들 간 합의로 틀을 만들어가는 다자외교는 체질을 강화하는 한약과 비슷하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국제사회 조직화를 통해 보다 평화롭고 번영하며 자유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우리와 같이 국제질서에 대한 통제력에 한계가 있는 중견 국가들에 다자외교는 이를 극복할 중요한 외교수단이다. 혼돈기의 국제질서에서 우리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엔을 포함한 다양한 국제·지역기구에서 능동적 다자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주변국 외교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익을 세계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다자외교에 투영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다자외교 수행에 필요한 전문 인력과 자원을 늘리고 독자적 의제를 주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매일경제, 2020-10-21]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0/10/1076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