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우수 성적 사무관이 떠나는 외교부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 前 국립외교원장

외교부가 언론에 난타당하고 있다. 연이은 성추행, 갑질과 부정, 특임공관장의 무능 등이 연일 보도된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외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주요 공관에서의 외교 전문이 대폭 줄었다. 주한 중국대사는 취임 7개월 남짓 국내 주요 인사 79명을 만난 반면, 우리 주중 대사는 17개월간 20명을 만난 데 불과하다고 한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국제 무대에서 북한 조력자로 전락했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사살·화장당하는 상황에서 열린 청와대 회의는 외교 장관을 부르지 않았다. 청와대가 한·일 정보보호협정 종료를 결정할 때도 외교 장관은 부재 중이었다. 있으나 마나 한 외교부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런 와중에 젊고 유능한 외교관들이 외교부를 등지고 있다. 특히 국립외교원에서 처음 배출한 최우수 성적의 사무관이 외교부를 떠났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평생 외교관 교육을 업으로 했던 사람으로서 깊은 자괴감을 감출 길이 없다. 외교원 수료식마다 신임 외교관에게 “잘되는 나라는 가장 뛰어난 최고 인재들에게 가장 어려운 직무를 맡긴다, 최고의 인재가 되도록 지옥 같은 교육을 했고 이를 이겨낸 여러분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어려운 난관을 이겨낸 최고 인재들이 떠난다는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다국적 기업이나 변호사보다 적은 수입 때문에 떠난 것은 아닐 것이다. 외교관에 대한 자부심도 비전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배들이 미국이나 일본을 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고 10년 전 동맹파냐 자주파냐에 따라 당시 사무관들까지 좌천되고 벼락 승진되는 현상을 보면서, 젊은 외교관들은 정치권 줄 대기가 능력과 노력보다 우선한다고 느낄 것이다.

외교관의 꿈은 대사다. 고시만 합격하면 누구든 대사가 되는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다. 대사가 되기 위해서는 5년마다 어학 검증을 통과해야 하며 어려운 역량 평가도 2번이나 받아야 한다. 외교관은 평생 시험과 평가를 받아야 하는 직업이 되었다. 그런데 특임공관장은 예외다. 과거에는 특임공관장도 어학 검증이 관례였다. 이로 인해 공관장이 되지 못하거나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어학 검증도 없어지고 대통령이 임명하면 누구나 공관장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부 순혈주의를 깨고 외교 역량을 높이기 위해 외부 인사의 공관장 보임 비율을 30%까지 확대하고자 한다. 전문성 있는 외부 인사가 공관장이 되는 것은 조직에 활기를 주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주재국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단지 선거 캠프에 기여했고 코드에 맞는다고 전리품 얻듯이 공관장이 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최근 특임공관장 33명 중 21명이 대통령 측근이거나 여권 인사다. 공정성도 공관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질도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외교부 자체의 문제도 있다. 고시만 합격하면 그들만의 평등 문화가 있다. 인사에 있어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좋은 곳을 근무한 사람은 다음은 험지로 가는 냉탕 온탕 인사가 기본이다. 서남아국장을 멕시코대사로 발령하고, 중동국장을 일본 총영사로 발령한다. 고시를 합격한 인재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의 만용이다. 공관장 임기도 점점 줄어들어 2년 반을 넘기지 못한다. 발령받은 지역에 현지어도 모르고 아무런 지식도 인맥도 없는 공관장이 2년 남짓 무슨 외교 활동이 가능할까? 이스라엘의 휴스턴 총영사는 거의 종신이다. 그가 하는 일은 부시 대통령 일가의 대소사를 챙기고, 필요시 그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선진국 대부분 공관장은 지역에 대한 전문성과 4년 이상 임기를 갖고 인적 네트워크을 구축한다. 우리 외교관이 아무리 우수해도 그들의 인맥을 당할 도리가 없다. 외교부가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는데, 공관장은 누가 가도 상관없다는 구실이 된다.

지난 30년 가까이 외교부는 의미 있는 증원 없이 직제상 조직만 비대해졌다. 실장, 국장 등 고위직만 대폭 늘었다. 그 결과 실무 인력은 없고 과장은 과거 사무관이 하던 일을 하고 국장은 서기관이나 과장이 하던 일을 한다. 외교부 사무관들의 역할과 권한이 작은 이유다.

외교관은 전문성을 요하는 직분이다. 정치권이 외교 직무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공관장은 검증이 필요하다. 미국은 주요 대사에 대한 의회 청문 제도를 갖는다. 또한 공관장의 임기를 늘리고 전문성을 갖는 외교관들을 길러낼 수 있는 인사 제도 개혁도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치권에 줄 대지 않고 오직 일로 승부할 수 있는 공정한 조직이 되는 것만이 젊은 외교관의 이직을 막고 외교부를 살리는 길이다.

[조선일보, 2020-10-27]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0/10/27/QM7DLGEIFNGMVDW242QOUJJPGU/?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