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맹·북핵 외면한 종전선언 위험성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지난 8일 오전 뉴욕에서 개최된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 화상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라고 한 점은 지난 9월 23일 유엔총회 화상연설 때와 같았으나, 이번엔 “전쟁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고 제도화할 때 우리의 동맹은 더욱 ‘위대’해질 것”이라고 해 종전선언을 한·미 동맹과 연결시켰다.

서해에서 북한이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한 데 대한 국민적 공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문 대통령이 미국 조야에 종전선언을 강조한 것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그 해답은 10일 새벽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나타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남북관계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킬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지난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발언에 대한 화답이었다. 김 부부장은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라는 지난 기간 조미 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조미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적대시 철회를 한반도 종전선언으로 해석한 듯하다. 그러나 김 부부장의 담화는 제재 해제를 적대시 철회로 바꾼 게 아니라, 미·북 협상 재개를 위한 조건을 추가한 것이다. 제재 해제를 않으면 비핵화 조치는 않겠다는 것이고, 협상을 재개하려거든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는 한·미 동맹 해체에 가깝다. 한·미 연합훈련 폐기로부터 미·북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에 이르기까지 길게 펼쳐 놓고 상황에 따라 얘기를 달리하지만, 결국은 한·미 동맹을 폐기하라는 얘기다. 북한이 제재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처지가 궁색해 종전선언을 핑계로 미국과 대화를 재개하더라도 협상이 불리해지면 적대시 정책 철회를 또다시 들고나올 것이다. 지난 30년간 양자·4자·6자 회담을 통해 나타난 북한의 행태가 그러했다. 적대시 정책 철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북한은 명확히 밝힌 적이 없다.

6·25전쟁 종전선언이 어떻게 한·미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가 없다. 한·미 동맹에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면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종전선언이 의미를 가지려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 미국과 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하면서도 핵 개발을 멈추지 않았던 북한으로부터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핵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확약이라도 받아낸 것인가?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유엔 안보리 핵심 제재 결의 5개를 해제해주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거절당했다.

한·미 동맹은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한 군사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북한 비핵화 정책을 지속하며 억제 및 방어태세를 견고히 할 때 위대해질 수 있다. 어설픈 종전선언이 아니라 표류하는 우리 공무원을 사살하고 불태우는 북한의 만행을 국제 규범에 따라 심판하겠다는 또렷한 정신이 있을 때 동맹은 더 위대해질 수 있다.

[문화일보, 2020-10-27]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012010731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