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 바이든의 민주주의 동맹 이탈 땐 자충수

-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트럼프 시대가 지나갔다. 최근 미국 싱크탱크와의 웨비나에서 미국 지식인들은 트럼프가 선동한 폭도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사실에 너무도 부끄러워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미국의 민주주의가 되살아났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트럼프는 민주·공화 양당에서 공적이 됐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트럼프와의 달콤한 추억을 못내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협상의 추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비핵화의 길은 더 멀어졌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오히려 향상됐으며, 북한과의 협력도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트럼프식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재고할 때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 질서 운영은 트럼프 시대와 판이할 것이다. 우선 미·중 관계에 대해 트럼프는 최대 압박을 구사하면서 중국과의 ‘결별(decoupling)’을 위협했지만, 바이든의 참모들은 중국과의 ‘경쟁적 공존(competitive coexistence)’을 주장한다. 중국과 공존하면서 통상적인 거래와 교류를 지속하겠지만, 미래 질서에서의 경쟁 우위 확보에 주안점을 둔다.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첨단 기술 동맹’을 결성해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면서 다자주의적 규범 강조를 통해 미국의 책임 경영을 강조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힘의 본보기(example of power)’가 아니라 ‘본보기의 힘(power of example)’을 말한 이유이다.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 마련할 전망

북한 문제에 대해 트럼프는 톱다운 방식에 의해 정상 간의 합의를 통해 돌파구를 열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극적 반전을 통한 거래의 일상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고자 했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한 접근법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했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새 전략 짜기”를 언급했다. 웬디 셔먼, 커트 캠벨, 성 김 등 바이든 참모들은 북한의 행태와 협상 방식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이다. 트럼프식 접근은 ‘전반적으로 실패’라고 이미 판정한 상태이며, 북한 핵 능력은 강화된 데 반해 비핵화 진전이 없다는 데 이견이 없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진전이 없는 한 압박과 제재는 유지할 것이다.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핵 동결에서 시작해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로드맵과 협상 전략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의 국제적 책임을 팽개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동맹에도 방위비 분담과 무역 관세 부과를 마다치 않았던 트럼프와는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당일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복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조직해 국제사회 내 우군 확보에 나설 것이고,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경제 기구들의 활성화는 물론, 기후·에너지·환경·보건 등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s)’ 창출에 힘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신국제 질서 운영 기조는 우리에게 기회다. 규범과 원칙에 기반을 둔 ‘예측 가능한’ 국제 질서 운영이 예상된다.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한·미 연합 훈련이나 전략적 자산 전개도 한국이 원한다면 복원 가능할 수 있다. 트럼프는 ‘비용 분담’을 원했지만, 바이든은 ‘역할 분담’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정책 결정 과정도 경로 의존적이고 체계적 방식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가족이나 비공식적 측근들에 의존하기보다는 참모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동맹국들이 제도화된 채널을 통해 의견을 입력하는 과정이 복원될 것이다. 국제 네트워크 관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뚜렷한 잣대와 ‘글로벌 리더십 복원’이라는 목표가 있어 미국 지도부의 의사를 추정하기 쉬워질 것이다.

대북전단금지법 강행은 악수될 가능성

이 같은 국제 질서 운영 원리의 복원이 주는 도전도 상당하다. 우선, 바이든 행정부가 존중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잣대에서 벗어나는 행동과 주장을 할 경우 ‘줄서기 잘하라’고 압박해올 공산이 크다. 예를 들어 대북전단금지법을 강행하거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불참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악수가 될 수 있다.

또 중국의 강압적 태도에 대한 침묵이나 모호한 입장 표명은 한국의 중국 경사 이미지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안보나 첨단 기술 면에서 중국 편을 드는 것은 악수 중의 악수다. 민주주의 글로벌 네트워크 참여에 대한 주저나 불참, 대오 이탈은 한국의 동맹국으로서의 가치를 의심하게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한·미·일 관계 복원도 군사·안보적 관점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 간 연합의 시각에서 파악하는 게 타당하다. 한·일 역사 분쟁에 매달리거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흥정 대상으로 삼는 방식 등에 대해 거부감이 클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한국 정부가 한·미 동맹보다 남북한 관계 개선을 우선하는 조급성을 보일 경우이다. 한국 정부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집착,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제재 완화 요구, 또는 남북한 협력 사업 독자 전개에 유혹을 느낀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제동을 걸 공산이 크다. 비핵화도 이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미 동맹이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2021-01-27]
https://news.joins.com/article/23979251